대정부질문 첫날부터 아수라장…김진표 "초등학교 반상회도 이렇지 않아"

국무위원들 답변 과정에서 과도한 언사
유권자로부터 선출된 국회의원에 예 갖춰야
"제발 좀 경청" 의원들에게도 당부

21대 마지막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첫날부터 여야 의원 간 고성을 오가면서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개의 직후 여야 의원들과 국무위원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달라"고 당부했지만,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첫 질의부터 여야 의원 간 야유와 공방이 오가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이날 김 의장은 본회의 시작부터 "국무위원 여러분께 한 말씀 드리겠다"면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근래에 국무위원들의 답변 과정에서 과도한 언사가 오가는 예가 발생하는 등 적절하지 않은 답변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모든 국회의원은 개인으로 질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으로서 질의를 하는 것이다. 국무위원 여러분께서는 국회에서 답변하실 때 모든 국회의원은 적어도 20만에서 30만 유권자로부터 선출된 국민의 대표인 만큼 국민에게 답변하는 자세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서 답변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원님들께서도 질의하실 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주시고 동료 의원이 질의를 할 때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주시기를 바란다"며 "국무위원의 답변이나 동료 의원의 질의에 대해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평가는 국민이 하는 만큼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실 것을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의 이날 발언은 과거 자신이 국무위원이었을 때 경험을 되새기면서 한 조언이었다. 김 의장은 17대 국회의원으로 역임하던 2006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인적자원부(현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돼 상임위원회에 출석했다. 당시 김 의장이 같은 당(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과 질의를 주고 받으면서 "의원님께서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 편하게 답변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소속이었던 당시 권철현 교육위원장은 회의를 끝내면서 김 의장에게 '의원을 보지 말라고 의원 뒤에 있는 20만~30만명 국민을 보고 답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국무위원으로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 말을 들은 김 의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약 20년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음 속에 새기고 있다고 의장실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이같은 당부는 첫 질의부터 무색해졌다. 질의자로 나선 설훈 민주당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상대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해 따져 묻는 과정에서 막말과 고성이 이어졌다. 설 의원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은 공산당이라고 폄훼하고 친일반민족자(백선엽 장군)는 육사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라가고 찬양하고 있다"면서 "이게 바로 극우 뉴라이트의 본색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연찬회에 가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이렇게 주장했다.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면 극우 뉴라이트의 편향된 이념이 대한민국 이념이 돼야 하냐"며 따졌다.


설 의원은 또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 하겠나 이렇게 지시하면서 (보고서를) 바꾸라고 이야기했다"며 "대통령이 만약 그렇게 했다면 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 총리는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답변했지만, 설 의원은 "이런 내용이야말로 특검하고 국정조사 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대통령이 법 위반을 한 것이고 직권남용한 게 분명하다. 탄핵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탄핵이라니"라고 반발하며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김 의장은 설 의원의 질의가 끝나자 "국회의 본회의장이라고 하는 곳은 의회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장 아니겠나"라면서 "그러면 서로 다른 견해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이어 "그것을 국민들이 듣고 판단하게 하셔야 되는데 지금 여야 의원들이 방청석에서 하시는 태도는 국민들이 발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못 듣게 방해하고 있다"면서 "제발 좀 경청해달라. 초등학교 반상회에 가도 이렇게 시끄럽진 않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장실 관계자는 "초등학교 반상회란 표현은 아마 초등학교 회의 등을 언급하신 걸로 보면 될 것 같다"면서 "모두발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공방이 이어지자 급하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대장동 의혹 윤석열 대통령 몸통설'과 관련한 가짜 뉴스를 질의하는 과정에서 여야는 다시 맞붙었다. 한 장관은 "가짜뉴스 유포라든가 선거공작 같은 것이 흐지부지되도록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니까 정치, 경제적으로 남는 장사가 되고 반복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고성이 흘러나왔다.

한편, 이날 김두관 민주당 의원의 질의 과정에서 한 총리의 답변 태도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의원은 윤 대통령이 호찌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 묘소에 헌화한 사진을 공개하며 "베트남이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가 우리나라로, 2800개 정도"라며 "이념 잣대로 보면 공산주의 국가에 투자하고 있는 2800개 기업을 총리가 철수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고, 한 총리는 "우리가 베트남의 국부의 흉상을 육사에 갖다 놓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정부가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이력을 이유로 육사에 있는 홍 장군의 흉상 이전을 추진한 것을 겨냥한 질문에 한 총리가 에둘러 답변한 것으로 장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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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