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진 혹사" 말나온 의원실 돌변…태영호 효과 퍼지는 여당

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최근 보좌진 해고 문제로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제소됐다. 조 최고위원은 지난해 6월 지역 사무실에 근무하던 인턴 한 명을 해고했는데, 해고된 인턴은 “사직서가 대필로 작성됐다”며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고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까지 했다. 논란이 커지자 조 최고위원은 사직서 대필 논란에 책임을 물어 지역 사무국장을 면직했는데, 이 사무국장도 조 의원이 사직을 종용하는 대화 녹취록을 폭로하고 나섰다. 이에 당원 50명여명 조 최고위원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지난 12일 윤리위에 징계요청서를 접수한 것이다.

보좌진이 폭로한 녹취록 사건으로 인해 지난 10일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하고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받은 태영호 의원에 이어 조 최고위원까지 윤리위에 제소되자 국민의힘 의원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당내에선 “보좌진을 옛날처럼 대했다간 금배지 떨어진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운동권 동지’ 문화가 남아있는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그동안 국민의힘 의원과 보좌진 사이엔 비교적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이 터지면서 일부 의원들은 자신을 뒤돌아보고 있다고 한다. 한 재선의원은 18일 중앙일보에 “태 의원의 가장 큰 잘못은 같이 일하는 사람을 잘못 건사한 것 아니냐”며 “보좌진의 민심을 얻는 것이 의원의 중요한 업무가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제 행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 초선의원은 최근 지역 사무실 보좌진이 은퇴한 뒤 채용 공고를 내지 않고 공석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내년 4월 총선을 고려하면 채용을 서둘러야 하지만 시간에 쫓겨 아무나 뽑았다가 탈이 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해당 의원은 “지역 내 중요한 정보를 모두 공유하는 사람인데,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보좌진 교체도 신중해지는 분위기다. 국회의원은 보좌진에 대한 임명권과 면직권을 모두 갖고 있어 사실상 의원이 소속 의원실 보좌진의 생명줄을 잡고 있는 구조다. 지난해 4월부터 국회의원이 보좌진을 해고하려면 한 달 전에 미리 알려줘야 하는 ‘면직 예고제’가 도입돼 그나마 사정이 나아졌지만 과거엔 ‘나가라’는 의원 한 마디면 곧바로 짐을 싸야 했다. 그런 만큼 의원실 직원이 자주 교체되는 의원실은 ‘의원이 이상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곤 했다. 여의도에서 보좌진을 자주 바꾼다고 소문이 퍼진 한 의원은 최근 주변에 “서로 일의 합이 맞는 보좌관 찾을 때까지 몇 번은 사람이 바뀌기 마련인데, 와전된 이야기가 돌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의원실 업무 메신저를 보안 기능이 강한 텔레그램으로 바꾸는 이른바 ‘텔레그램 망명’도 잇따르고 있다. 평소 평판이 안 좋은 의원실의 관계자는 “의원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 기록이 남지 않는 텔레그램으로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 보좌진 근무 환경이 안 좋기로 유명한 일부 의원실에서도 조금씩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태 의원 사건 이후 의원 태도가 조심스러워 진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측근이었던 보좌진과 척을 지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은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 사례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1996년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 1번지’ 종로에서 맞붙어 당선됐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선거 기획을 담당한 김유찬 전 비서(6급·현 직제는 비서관)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선거 비용 문제를 폭로했고, 이 전 대통령은 결국 재판에 회부돼 의원직 상실형이 최종 선고되기 직전인 1998년 2월 의원직을 자진 사퇴했다. 18~19대 의원을 지낸 박상은 전 새누리당 의원도 2014년 보좌관과 운전기사 등이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폭로하면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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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