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된 사건의 발단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이슈였다. 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문화 진흥 사업과 장애인 등 소수자 스포츠 지원 사업을 하기 위해 삼성·현대차·SK·LG 등 한국의 40여개 대표 기업에게서 774억원의 자금을 출연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서원(최순실)씨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씨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번졌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사면 되어 풀려난 지금,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이슈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재단 기금을 처리한 방식에 대해 위법성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핫 이슈된 재단 출연금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각각 2015년과 2016년에 설립됐다. 이후 2017년 3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이전까지 미르재단은 31개 기업에서 486억원, K스포츠재단은 40개 기업에게서 288억원을 출연 받았다. 이 돈은 각 재단의 통장에 보관되어 있었다.
2017년 3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담당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즉각 두 재단의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2개월 전이었다. 당시 두 재단의 기금 774억원을 어떻게 처리할 지가 세간의 관심이 됐다.
문체부는 박 전 대통령의 형사 재판 결과에 따라 처리 방향이 달라진다고 발표했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 강요, 직권남용 등 3개 혐의로 기소됐는데, 이 중 뇌물죄로 확정되면 국고로 몰수하고, 강요죄나 직권남용에 의한 경우에는 피해자인 기업들의 부당이득반환 청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기금 몰수와 반전
그로부터 2개월 후 문 전 대통령이 취임하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재판도 시작됐다. 해가 바뀌어 2018년 4월 박 전 대통령 형사 재판 1심 판결이 선고되기 직전에 문체부는 미르재단의 기금 잔액 462억원을 국고로 몰수하고 재단을 해산했다고 발표했다. 문체부 담당자는 “기금 출연자를 반드시 채권자로 볼 수 없다”며 “재단 청산 당시에 채권자에게 돌려주기 위해 채권자 신청 공고를 4차례나 냈으나 아무도 신고하지 않아 국고로 몰수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K스포츠재단은 문체부의 재단 해산 처분이 부당하다며 취소하라는 행정소송 중이어서 기금을 몰수당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2021년 1월 박 전 대통령은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뇌물죄와 강요죄는 무죄, 직권남용죄만 유죄였다. 대법원 판결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형법에 따르면 뇌물죄는 범죄이익을 국가가 몰수하도록 되어 있다. 기업들의 뇌물 제공 행위도 범죄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폭행과 협박에 의한 강요죄와, 공무원의 월권에 따른 직권남용죄는 몰수 규정이 없다. 대법원이 별도로 몰수를 명령하지 않으면, 피해자인 기업들은 재단을 상대로 출연금을 돌려달라며 부당이익반환 청구를 할 수 있다. 한 변호사는 “형사 재판에서 직권남용죄가 선고된다고 하더라도 돈을 돌려 받으려면 당사자간의 합의 혹은 채권-채무 관계를 확정하는 민사재판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문체부 맞붙나?
KT가 자금 회수에 첫 시동을 걸었다. 기금이 남아 있는 K스포츠재단을 상대로 7억원과 연체이자를 돌려달라며 민사 소송을 내 작년 5월에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이후 작년 11월에 K스포츠재단은 KT를 제외한 39개 기업을 상대로 일일이 채권을 확인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K스포츠재단은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에 대해 “재단을 청산하기 위해 채권을 확정짓는 절차”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 삼성생명·한화생명 등 5개 기업은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냈다.
법조계 분위기는 기업들에게 우호적이다. 신광렬 법률사무소의 신광렬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가 유죄가 됐고, KT가 승소해 돈을 돌려받은 대법원 판례도 있기 때문에 같은 성격의 사건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기업들의 요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미 국고로 환수된 미르 재단 462억원. 재단이 없기 때문에 기업들은 돈을 돌려 받으려면 문체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야 한다.
문체부는 2017년에 채권자 신고 절차를 이미 거쳤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박 전 대통령의 형사 재판 1심 판결도 나오기 전이기 때문에 채권 관계에 대한 입장을 정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한다. 뇌물죄로 확정될 경우 채권자라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향후 기업들이 소송을 걸어올 경우에 대해 “법률 검토를 거쳐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462억원의 행방도 관심
법률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미르재단의 기금 잔액 462억원을 형사 재판 1심 판결도 나오기 전에 재단을 해산하면서 국고로 몰수한 조치가 3가지 문제점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①재판 결과에 따라 기금을 처리한다는 문체부의 당초 발표에 어긋나고 ②대법원의 직권남용 판결 취지에 배치되며 ③대법원이 KT에게 돈을 돌려주라고 한 민사 판결 취지에도 반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법적 절차에 따라 국고로 환수했다는 문체부의 설명과 달리, 문재인 정부 당시의 문체부가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황급히 미르재단 기금을 몰수한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가 급전(急錢)을 조달하기 위해 미르재단 자금을 돌려 썼을 수 있다. 국회의 진상 조사와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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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