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공의 사직 수리 허용
진료유지·업무개시명령 철회
전문의 시험 차질 없게 '구제'
미복귀 시 행정처분도 미결정
근무한 전공의와 형평성 논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이 아닌 개별 의향에 따라 복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과 전공의에게 부과한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을 오늘부로 철회한다”고 밝혔다. 다만 전공의가 이탈한 2월 19, 20일 전후 명령이 발령된 이후부터 전날까지는 명령 효력이 그대로 유효하다.
이제 각 수련병원들은 전공의들의 복귀 의사를 파악해 사직자와 복귀자를 구분하게 된다. 돌아올 사람은 돌아오고 나갈 사람은 나가도록 전공의들에게 선택을 압박해 최대한 복귀를 유인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사실상 ‘최후통첩’인 셈이다. 전공의들도 줄곧 사직서 수리를 요구했기 때문에 정부 방침에 반발할 명분이 없다.
복귀 인원이 명확히 파악되면 병원은 대체 인력 채용, 전문의 확충 등 경영 정상화를 모색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그간 전공의 사직서 수리 요청이 많았고, 정부도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만큼 의료공백을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장관은 “환자와 국민, 의료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진료공백이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내린 결단”이라며 “각 병원장들은 전공의들이 복귀하도록 상담, 설득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부는 전공의 복귀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행정처분도 중단하기로 했다. 향후 집단행동 재발 등 법 위반이 없다면 처분이 소멸되는 ‘집행유예’와 같은 의미다. 1월 전문의 시험도 제때 치를 수 있게 하거나 추가 수련 완료 시기에 맞춰 별도 시험 기회를 마련할 방침이다. 3월에 수련 계약을 포기한 인턴들에게도 향후 병원과 계약하면 1년을 못 채우더라도 내년 2월에 인턴을 마칠 수 있도록 선처한다. 일단 복귀만 하면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고 불이익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은 “의대 증원이라는 정책 목적을 달성한 만큼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의료 정상화로 가는 길을 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당근책이면서 고육책이라고는 하지만,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았거나 중도 복귀한 전공의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비판이 거세다. 불법적 집단행동에 대한 제재가 없다면 사실상 특혜이자 면죄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기어이 사직을 강행하는 전공의에 대한 처분이 정해지지 않아 복귀자와 사직자 간 차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결국 환자를 지켜 온 전공의만 그간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는 등 피해를 본 처지가 됐다. 조 장관은 “처음부터 현장에 남아 있던 전공의들에겐 별도 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는 않았다.
의사는 집단 이익을 위해 환자를 버려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사 불패 신화’가 또다시 확인된 점도 우려스럽다. 앞으로 의정 갈등이 재현될 경우 의사들의 치외법권적 행태를 규제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 내부에서도 젊은 관료들을 중심으로 행정처분 중단에 대해 반대 여론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기계적 법 집행’을 내세웠던 정부가 스스로 원칙을 꺾었다는 점에서 엘리트 집단에만 법이 너그럽게 작용한다는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조 장관은 “전공의들이 100일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 의료진이 지쳐가고 중증질환자의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책 변경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향후 환자를 볼모로 정부 정책을 번번이 좌절시키는 의사 집단행동을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정부가 대승적으로 양보했는데도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의사들에게 주어진 일부 권한과 역할을 다른 직역에도 허용하는 방안까지 검토해야 한다”며 “의사들은 불법 행동을 해도 아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나쁜 선례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향후 법적 규제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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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