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축구협회의 언론 플레이
14일 오후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을 쏟아졌다. 한 기사는 "클린스만호에는 전술만 없는 게 아니었다. 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을 향한 선수들의 '로열티'도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선수들을 훈계한다. 또 이들이 고참급 선수, 어린 선수, 1996년생 주축 그룹 등으로 나뉘어 따로 논다고 친절하게 선수들을 '갈라치기'한다. 아울러 해외파 공격수가 자신을 강하게 압박하는 국내파 수비수에게 공을 강하게 차며 화풀이를 했다는 참으로 세세한 내부 풍경까지 전한다.
전형적인 받아쓰기 기사들이다. 작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 원정 경기 후 유럽파 선수들이 한국에 일찍 돌아가기 위해 사비로 전세기를 임대해 귀국했는데 협회가 허락한 것이었음에도 이를 '개인행동'이라 탓하면서 국내파 선수들이 박탈감을 느꼈을 행동이었다고 비난한다. 한 지도자는 국내파 선수들이 자존심 상할 일이었다며 "(해외파 선수들이) 알아서 자제해야 했다"며 꾸짖는다. 동일한 내용의 기사가 풍년이다.
파벌의 시작은 축구계 자신
선수들 간 갈등과 다툼은 어디에나 있다. 다른 종목에도 있다. 심지어 선수와 감독 간 갈등도 많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과 알력, 그리고 파벌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 바로 축구계다. 연세대 대 고려대, 명문대와 비명문대, 호남 대 영남, 수도권 구단 대 비수도권 구단, 프로구단 대 시민구단, 고참 대 신참, 최근엔 해외파와 국내파에 이르기까지 골치 썩을 파벌 간 갈등이 많았고 그로 인한 비리도 많았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는 이를 개선할 노력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러한 파벌주의에 안주해 행정을 해오지 않았나. 선수들 간 파벌문제의 본산이 바로 대한축구협회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파문 관련하여 감독 탓에 이어 선수 탓을 하는 (동일한 내용의!) 기사들을 보면 과거 '정몽준 장학생'처럼 지금도 축구협회의 우산 아래 협회의 지원을 받아 기사를 쓰며 본질을 외면하는 받아쓰기 기자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듯하다.
위화감 조성의 원조도 축구협회
특히 일부 유럽파 선수들이 급한 일정 때문에 사비로 전세기 띄운 점을 여러 언론을 통해 동시다발로 비난하는 것은 동의하기도 어렵지만 황당하기만 하다. 왜? 우리나라 스포츠계 전세기의 원조가 바로 대한축구협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선수단 해외 출장 때 전세기 띄우는 종목은 축구가 유일하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게임 때 한국 선수단은 대한체육회가 마련한 전세기에 단체로 탑승하는데 거기에서 유일한 예외가 바로 축구대표팀이다. 이들은 더 편하게, 따로 간다. 또 현지에 가서도 다른 선수단과 함께 선수촌에 묵는 게 아니고 시내 최고급 호텔에서 지낸다. (아마 지금도 대한축구협회의 연 예산이 대한체육회 소속 다른 모든 단체의 예산을 합한 것보다 많을 것이다.)
지금 많은 기사가 유럽파 선수들의 거만한(?) 행동을 비난하듯 하는데 원래 다른 선수들에게 박탈감 선사하고 위화감 조성하는 데 있어서 최고는 바로 축구협회다. 혹시 젊은 선수들이 무례하게 한 게 있다면 그거 다 선배 축구인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리고 급한 일정 때문에 협회의 허락까지 받고 한 것인데 이걸 나무라는 축구계 인사는 도대체 누구이고, 이걸 또 기사화하며 축구협회의 '선수 탓'에 동참하는 기자는 또 누구인가.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자 책임져야 할 단 한 사람은?
껍데기를 보지 말고 본질을 파헤쳐야 한다. 아시안컵 우승 실패에서 비롯된 지금의 아사리판을 한꺼풀 걷어내면 거기엔 무능한 클린스만이 있고, 그 뒤엔 지금 언론을 동원해 감독 탓, 선수 탓에 열심히 매진하는 대한축구협회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해온 사람이 바로 정몽규 회장이다. 그가 바로 이 사태의 시작과 끝이다. 지금 정 회장이 마치 결단의 시간을 보내며 고뇌하고 있는 것처럼 언론이 쓰고 있던데 가당찮다. 그가 바로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단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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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