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리 “참사로 위헌 정당화 안 돼”…정부, 지원책 발표
유족들, 오체투지로 울분…野 “유족 모욕”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오전에 열린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이태원특별법은 지난 9일 국민의힘의 표결 불참 속에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국민의힘은 이 특조위 구성과 권한에 문제가 있다며 본회의 통과 직후 윤 대통령에 거부권을 요청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이태원특별법'에 대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한 총리는 "이태원 참사는 유가족과 피해자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상처를 남겼다"면서도 "그렇다고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의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어 유가족과 협의해 '10.29 참사 피해지원 종합대책'을 범정부적으로 추진하겠다며 관련 계획을 발표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별도 브리핑을 통해 피해자의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금과 의료비·간병비를 확대하고, 현재 진행 중인 민·형사 재판이 최종 확정되기 전이라도 신속하게 배상과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유가족·지자체와 협의해 희생자들을 기릴 수 있는 영구 추모시설을 건립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윤 대통령이 이태원특별법을 국회로 돌려보내면서, 정부 출범 1년8개월 만에 9번째 거부권을 행사하게 됐다.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최다 거부권을 행사한 노태우 대통령의 7건을 집권 절반도 안 돼 일찌감치 뛰어넘은 셈이다.
이번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의 후폭풍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유족들과 시민사회는 이태원특별법 공포를 요구하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거세게 반발해왔다. 이들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 국민의힘 의원들은 자신들의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결정으로 역사에 남을 죄를 지었다"고 비판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 22일 1박2일간 참사 희생자 159명을 상징하는 숫자인 '1만5900배' 절을 하는 철야 행동을 진행했으며,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고되자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로 용산 대통령실을 향하기도 했다.
국제사회도 우리 정부의 조치를 주시해왔다. 유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 위원회는 지난해 이태원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전면적이고 독립적이고 공정한 기구'의 설립과 고위직을 포함한 책임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 등을 우리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도 정부의 이태원 특별법 공포를 거듭 촉구해왔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앞두고 야권에서도 비판을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을 향해 "뻔뻔한 정부"라며 "특별법을 거부할 생각은 엄두도 말라"고 최후 경고를 날린 바 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거부권"이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정부의 유족 지원 발표에 대해 "이것이야말로 유가족과 국민을 모욕하는 것이다. 피맺힌 호소를 외면하고 돈으로 때우겠다는 천박한 인식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태원특별법은 국회로 돌아가 다시 표결 절차를 밟게 된다. 표결 시점은 국회의장이 정한다. 표결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2 이상 찬성으로 가결되면 대통령은 법안을 다시 거부할 수 없고 법률로 공포해야 한다. 반면 부결될 경우 법안은 폐기된다. 앞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쌍특검법' 역시 라직 국회서 재의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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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