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국방부는 왜?” 드러나는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정황

7월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보고서를 결재했다가 다음 날 결정을 뒤집었다. 언론보도와 국회를 통해 ‘이첩 보류 지시’ 전후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해병대 1사단 포병여단 포7대대 소속 채 아무개 상병은 7월19일 경북 예천에서 호우 피해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순직했다. 사건 경위 파악 및 기초 수사(조사)에 착수한 해병대 수사단은 8월2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박상현 7여단장 등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북경찰청에 이관했다. 수사단은 지휘관 각각의 주의의무 소홀로 채 상병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군에서 일어난 사망사고 중 범죄가 의심되는 경우 민간 경찰이 수사하고 민간 법원에서 재판한다. 이예람 중사 사망 이후 지난해 군사법원법이 개정되고 관련 법령이 신설된 데 따른 결과다. 군은 기초 수사 중 범죄 혐의를 인지하면 ‘지체 없이’ 인지 통보서에 혐의자의 신상과 죄명, 인지 경위, 범죄사실을 적고 관련 기록과 증거물을 모두 경찰에 넘겨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 검찰단은 8월2일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인계한 서류를 당일 모두 회수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 서류가 ‘항명 증거자료’라고 했다. 7월31일부터 이틀간 여러 번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지만 해병대 수사단이 불복했다는 주장이다. 조사를 지휘했던 박정훈 대령(해병대 전 수사단장)은 집단항명 수괴 등 혐의(이후 항명으로 혐의 변경)로 입건됐다. 이와 별개로 국방부 조사본부는 사건 재검토에 나섰다.

재검토 결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대상자가 8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박상현 7여단장 등을 제외하고, 포11대대장과 포7대대장만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지침을 위반하고 허리까지 입수를 직접 지시했다는 이유에서다. 8월24일 국방부는 재검토 결과를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기록과 함께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주요 임무가 실종자 수색임을 알고도 출동 당일 뒤늦게 7여단장에게 임무를 전파하고, 구명조끼나 안전로프 등 안전대책을 강구하도록 지도하지 않았다. 작전 투입 전 임무 수행에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하지 않았고, 외적 자세 등에 대한 지적만 하며 안전대책에 관한 세부 지침을 하달하지 않았다.” 해병대 수사단이 작성한 ‘채 상병 사망 원인 수사 및 사건처리 관련 보고(수사보고서)’ 문건에 적힌 임 사단장의 혐의 내용이다. 이종섭 장관은 7월30일 이 수사보고서를 결재했다가 다음 날 돌연 결정을 뒤집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군 내부의 석연치 않은 절차가 언론보도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후 언론보도와 국회를 통해 문제가 계속 제기되면서 ‘이첩 보류 지시’ 전후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장관은 “결재할 때도 확신이 있어서 한 건 아니었다(8월21일 국회 국방위원회)”라고 말했다. 다만 장관의 결재 번복 뒤 7월31일부터 이틀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박정훈 대령 사이 다섯 차례 통화가 오간 사실이 드러났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사건 혐의를 빼고 사실관계만 정리해서 이첩할 수 있다(8월25일 국회 국방위원회)”라는 원칙적인 내용을 설명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해병대 수사단이 기억하는 상황은 다르다. 7월31일 오후 4시께 오간 통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때 박정훈 대령은 유재은 법무관리관과 통화하면서 스피커폰을 켰다. 그 자리에는 부하 두 명도 함께 있었다.

통화를 같이 들었던 부하 박 아무개 중령과 최 아무개 준위가 작성한 사실확인서에 따르면, 유 법무관리관은 통화에서 “죄명, 혐의자, 혐의 내용 다 빼고 일반 서류처럼 넘기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박 대령이 “이렇게 말하는 게 장관의 명시적인 지시가 있어서냐”라고 되묻자, “아니다. 개인 의견이다”라고 답했다. 지난해 군사법원법 개정 이후 국방부가 사망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이첩한 6건 중 혐의가 적시되지 않은 사례는 없다.

박정훈 대령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의 설명이다.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사망의 원인이 된 범죄를 인지했을 때 즉시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7월28일 담당 군사법경찰관이 8명의 범죄 혐의 인지보고서를 1광역수사대장에게 올렸다. 그걸로 인지는 끝난 거다. 군사법원법과 관련 대통령령에 따라 이첩해야 할 의무가 발생했는데 장관이 이첩 보류를 명령한들 따를 수 있겠나? 게다가 혐의 대상자를 바꾸려면 이미 작성된 인지보고서는 파기해야 한다. 그건 범죄다.”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했다”
박정훈 대령은 장관의 지시가 단순히 이첩 보류가 아니라 수사 축소·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대령이 군검찰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진술서에 적힌, 7월31일 박 대령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대화다. 박 대령이 물었다.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 것입니까?” “오전에 대통령실에서 VIP(대통령) 주재 회의 간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김 사령관).” 박 대령이 “정말 VIP가 맞습니까?”라고 되묻자 김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답했다(8월30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가 시작될 때부터 이번 조사에 관심을 보였다. 7월21일 해병대 수사단은 국가안보실 요청에 따라 수사계획서를 제출했다. 7월30일 국가안보실은 ‘수사보고서’를 요청하기도 했다. 당일 장관에게 보고한 자료다. 해병대 수사단은 '수사 중'을 이유로 언론 브리핑 자료를 대신 넘겼다.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은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자료를 넘기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직접 연락해 상황을 파악했다. 박 대령 측은 이종섭 장관의 변심에 대통령실이 개입되었을 거라고 의심한다.


박 대령의 우려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새로 작성한 인지 통보서에는 임 사단장이 빠졌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문제가 식별됐지만, 현재 기록만으로는 혐의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사전에 실종자 수색 임무를 논의했다는 1사단장과 다른 회의 참가자들의 진술이 엇갈렸다. 작전에 투입된 간부들은 작전 투입 전 실종자 수색 지시가 없어서 안전 장구 등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임 사단장은 조사 과정에서 “사고 부대가 물에 들어간 것이 이번 사고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현장 부대에 책임을 돌린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종섭 장관은 경찰 수사가 군의 조사에 귀속되지 않는다면서도 “실제 혐의자는 2명인데 8명이 (이첩 대상에 포함) 되면, 이 8명은 계속 경찰에게 불려 다니면서 수사를 받게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이 장관도 군의 조사가 경찰 수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대목이다. 김정민 변호사는 “군이 사단장을 이첩 대상에 포함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경찰에서 사단장, 여단장을 입건하는 건 불가능하다. 경찰은 이첩된 사건을 더 적극적으로 수사하기보다 (군에서 이첩한 혐의자를) 빼는 식으로 수사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국방부 검찰단의 서류 회수 과정이 적법한지를 두고도 문제가 제기됐다. 경북경찰청은 8월2일 오전 8시2분 해병대 제1광역수사대에서 보낸 ‘사건 인계(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공문을 수신했다. 1광수대장과 수사관은 당일 오전 10시30분께 실물 기록을 경북경찰청 형사과에 제출했다. 그런데 국방부 검찰단이 같은 날 오후 1시50분경 유선으로 회수 의사를 밝히고 당일 오후 7시20분쯤 사건을 회수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검찰단과 경북경찰청 사이에 오간 공문은 없다.

국방부 검찰단의 회수 과정은 적법했나
경북경찰청은 해병대 수사단이 인계한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 국회를 통해 확보한 경북경찰청 답변을 보면 ‘이첩 과정에서 회수 요청이 있어서 접수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경북경찰청은 “이첩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해 상호협력 원칙에 따라 회수 요청에 응했다”라고 주장한다. ‘상호협력 원칙(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3조)’은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 법원 관할 사건에 적용되는 규정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사건 자료를 ‘항명 증거자료’로 판단해 가져왔다고 했다. 군인 항명 사건의 재판권은 군사법원에 있다. 상호협력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 국방부 검찰단은 군사법원법 제231조에 따라 협조받았다는 입장이다.

이예람 중사 유가족 법률대리인이었던 강석민 변호사는 “사건 인계 공문을 수신하고, 실물 서류를 받았으면 접수는 이미 끝난 거다. 국방부가 항명 증거로 자료를 가져오려면 압수수색 등 증거를 확보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북경찰청은 넘겨받은 자료를 “수사관들이 함께 신속히 파악하기 위해” 복사했다가 군검찰 회수 과정에서 당일 파기했다. 김정민 변호사는 이 지점을 의심한다. “사건을 접수하지도 않았는데 왜 사본을 만들었겠나. 압수수색에 대비한 인증 사본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경북경찰청이 압수수색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절차를 따르지 않은 채 증거를 넘기고 사본을 파기했을 수 있다.”


박정훈 대령을 향한 군의 수사(항명 혐의)는 현재진행형이다. 군검찰 수사심의회 결과, '수사 중단' 의견이 많았지만(수사 중단 5명·수사 계속 4명·기권 1명) 과반 표결로 심의 의견을 내지 못했다. 박 대령은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거부하고 보직해임 집행정지 신청‧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김정민 변호사는 “박정훈 대령이 이첩을 강행한 건 범죄를 저지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첩하지 않고 혐의 대상자를 변경하는 순간 수사관들에게 기록 파기나 변조를 지시할 수밖에 없다. 군인은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한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나라를 위해서 명예를 바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8월30일 국방부 검찰단은 증거 인멸·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이유로 박 대령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9월1일 기각됐다. 이날 중앙지역군사법원은 “현 단계에서는 증거인멸 내지 도망의 염려 및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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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