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직인사 발표 1주일만에 뒤집혀
대통령 재가받은 인사 취소 처음
김규현 원장 측근, 인사전횡 의혹
與관계자 “자기사람만 요직 앉혀”
국가정보원이 최근 1급 간부 7명에 대한 보직 인사를 냈다가 1주일 만에 번복하고 직무 대기발령을 낸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인사를 재가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원 특정 간부가 인사에 깊이 관여한 사실을 파악한 뒤 문제가 있다고 보고 뒤늦게 이번 인사를 뒤집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당국의 고위 간부 인사가 대통령실 인사 검증은 물론이고 대통령 재가까지 거친 뒤 번복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정원은 2주 전 국·처장에 해당하는 1급 간부 7명에 대해 새 보직 인사 공지를 했다가 돌연 지난주 후반 발령을 취소했다. 복수의 국정원 관계자는 “발표까지 된 임명 공지가 갑자기 취소된 건 초유의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7명 모두 직무 대기발령으로 붕 떠 있는 상태라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고도 했다. 앞서 국정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4개월여 만인 지난해 9월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1급 간부가 전원 퇴직한 뒤 주로 내부 승진자로 1급 간부 20여 명을 새로 임명했다. 이때도 임명 과정에서 인사를 물린 뒤 다시 단행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임명 공지 후 인사를 거둔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김규현 국정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A 씨의 인사 전횡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지난해 9월 1급, 11월경 2·3급 간부 100여 명의 인사 때도 깊이 관여한 국정원 실세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A 씨는 이번에 번복된 1급 인사 명단에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A 씨가 인사를 쥐락펴락한다는 투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들어간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은 잠정적으로 (투서 내용이) 맞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A 씨가 김 원장과 1, 2, 3차장·김남우 기획조정실장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자기 사람만 요직에 앉혔다는 말도 나오는 걸로 안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은) 지금 A 씨가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같은 사람인지 등도 판단하는 중”이라고도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실세로 알려진 추 전 국장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등을 불법 사찰한 혐의(국정원법상 정치관여 및 직권남용)로 기소돼 올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1급 간부 7명에 대한 보직 인사를 재가했다가 1주일 만인 지난주 돌연 뒤집은 것은 국정원 간부 A 씨가 권한을 남용해 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일각의 문제 제기를 파악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13일 “윤 대통령은 A 씨가 인사 전횡을 한다는 투서에 대해 잠정적으로 사실관계가 맞는 것으로 판단했고 이에 따라 인사 대상자들이 직무 대기 발령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1급 인사 대상의 절반 정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했다. 이번에 번복된 1급 인사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A 씨 외에 다른 인사 대상자들에 대해서도 임명 부적격 사유가 될 수 있는 문제를 대통령의 인사 재가 뒤에 뒤늦게 발견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복수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A 씨는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고위 간부 인사들이 물러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지난해 1급 간부 27명을 교체하고 100여 명의 2, 3급 인사들을 정리했을 때도 A 씨가 문재인 정부 색채를 지우기 위해 인사에 적극 관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다만 국정원 내부에선 김규현 국정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A 씨가 무리하게 인사에 관여했다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일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공개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기획조정실장 및 차장들과 김 원장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았다는 여권 관계자의 전언도 나왔다.
국정원에선 지난해 10월 조상준 기획조정실장이 임명 4개월 만에 사직하면서 수뇌부 간 갈등설이 퍼진 바 있다. 대통령실은 정보 당국 내부에 잡음이 생기는 상황을 경계해 온 만큼 인사 전횡 의혹이 불거진 이번 상황을 더욱 엄중하게 본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 등 이슈가 산적한 상황에서 정보기관이 내부 인사 시비 등에 휩싸이면 문제라는 인식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앞서 2월 국정원을 비공개로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국정원 운영과 관련해 “유연하고 민첩한 의사결정 체계와 인사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재가한 뒤 인사 전횡 의혹이 제기돼 인사가 철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만큼 국정원 지휘 계통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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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