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통령 "100년전 일로 무조건 무릎꿇어라 하는건 못받아들여"

尹대통령, WP 인터뷰서 언급
5박 7일 국빈 방미 일정 돌입

▲ 5박7일 방미 일정 시작 -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4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탑승하기 전 인사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공항으로 환송 나온 여당 지도부 등과 일일이 악수한 뒤 전용기에 올랐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미국으로 출국해 5박 7일간의 국빈 방미 일정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국빈이다.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한 윤 대통령은 국빈이 머무는 백악관 북쪽의 영빈관 블레어하우스를 이용하며 동포 간담회 등 공식 일정을 시작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보도된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70년을 맞은 한미 동맹에 대해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동맹이고 무엇보다 가치 동맹”이라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이번 방미가 양국 국민이 한미 동맹 70주년의 역사적 의미, 성과 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양국 정상은 오는 26일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중국·러시아·북한 등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동맹’ 기조를 분명히 밝히는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WP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불법 침략을 받았기 때문에 다양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다만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는 우리나라와 교전국 간 다양한 직간접적인 여러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지를 뒀다. 윤 대통령이 지난 19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등을 전제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것에 비하면 한층 신중해진 입장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 등을 고려해 발언 수위를 낮춘 것으로 해석됐다.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중·러 3국이 극도로 밀착하고 있는 가운데, 윤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한미 양국이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미국의 대응 정책마다 한국이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3일 백악관이 한국 측에 중국이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의 중국 내 반도체 판매를 금지하더라도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시장의 공백을 한국 회사들이 채워주지 말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 말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는데, 일종의 대미 제재 차원에서 마이크론을 중국에서 퇴출시키려는 수순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마이크론과 함께 D램 시장을 삼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사 이익을 볼 수 있지만, 반도체 공급을 통제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구상에 지장이 되므로 한국에 협력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다.

윤 대통령은 WP 인터뷰에서 일본과의 외교 관계 회복에 대해 “지금 유럽에서는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미래를 위해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있다”며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 문제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라며 “설득에 있어 저는 충분히 했다고 본다”고 했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와 이어진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국내 일각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있지만, 이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비춰봤을 때 한일관계 개선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며 “이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끼리는 과거사 문제든 현안 문제든 소통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인터뷰 발언을 추가로 전했다.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선 한·미·일 협력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질 예정이다.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를 하루 앞둔 23일, 윤 대통령 부부가 머물 영빈관 ‘블레어하우스’를 비롯해 백악관 주변은 거리 가로등마다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가 내걸렸다. 백악관 서쪽의 업무용 건물인 ‘아이젠하워 행정동’ 벽면에는 초대형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부착됐다. 백악관 북쪽 라파예트 광장에서 미군 의장대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도열한 뒤 군악대와 함께 백악관 경내로 들어갔다는 목격담도 전해졌다. 오는 27일 윤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게 될 미국 의회에서도 당일 취재 대응 등의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

한편, 윤 대통령은 WP 인터뷰에서 자신은 오랫동안 미국의 헌법 시스템과 국제적인 영향력에 매료됐었고, 성장하면서 미국 음악이나 TV 프로그램을 즐겼다고 언급했다. WP는 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작년 5월 첫 정상회담 때 선물한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명패를 소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또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 “나이 들어서 늦게, 50대가 다 돼서 제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것이 가장 기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52세 때인 2012년 40세 김 여사와 결혼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24일 낮 12시 40분쯤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를 타고 미국 워싱턴DC로 향했다. 윤 대통령은 하늘색 넥타이를, 김 여사는 하늘색 코트를 각각 맞춰 입고 공항으로 환송 나온 조이 사쿠라이 주한 미국 대사대리, 여당 지도부 등과 일일이 악수한 뒤 전용기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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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