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안 왔다면…" 강릉 불태풍 앞에서 기도, 산림청장 작심 토로

▲ 남성현 산림청장이 3일 오전 대전 서구 흑석동 기성중학교 운동장에 마련한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에서 대전·충청지역 산불 진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지난 11일 강릉 산불 현장 통합지휘본부 상황실에서 퇴근한 남성현 산림청장은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강풍 예보로 산림청 헬기가 못 뜬다는 가정 하에 작전을 펼치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기상 상황이 변하길 기도했다”고 털어놨다. 산림청 특수진화대와 전국 소방서, 군 지원 병력까지 협동해 화마와 지상전에서 조금씩 우위를 점해가고 있었지만, 건조한 가운데 강풍이 계속 불면 인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오후 1시쯤에 온다던 비구름은 태백산맥 동쪽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서쪽에만 비를 뿌려 기다리던 이들을 애타게 했다. 다행히 강원도에 형성된 두 번째 전선이 오후 3시 30분 강릉 지역에 본격적인 비를 뿌렸다. 이 비를 전후로 강풍이 잦아들었고, 산림청 헬기 4대가 떠서 주불을 잡았다. 오후 4시 30분, 주불 진화 선언과 함께 통합지휘본부는 해산했다. 남 청장은 헬기가 6시간 만에 투입됐을 때 기분을 묻자 “‘잘하면 오늘 중으로 주불을 진화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답했다.


1978년 7급 공무원으로 산림청에 몸담은 남 청장은 한때 산불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산림항공본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기후변화 시대에 산불은 국가 안보에 준하는 위협”이라며 “이제 산불 진화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산불 끌 수 있는 길 만들어야”


남 청장은 산불 대응을 위해서는 산림에 임도(임산 도로)가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헬기를 동원하지 못할 경우 지상 인력만으로 산불 대응이 가능하려면 체계적인 임도 설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 청장은 “현재 우리나라 산림의 헥타르(ha) 당 임도 밀도는 선진국 대비 10분의 1 수준”이라며 “환경단체는 반대하지만, 국토 60% 이상 차지하는 산림 어디든 진화용 차량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매년 산불 피해로 인한 산림 면적 손실이 임도 확충으로 인한 면적 손실보다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경단체들은 임도 개발로 산림이 훼손되고 임도 관리 미비시 관광 차량이 증가해 생태계 파괴가 일어날 것을 우려한다. 이에 대해 남 청장은 지난달 지리산(경남 하동)에서 난 산불을 예로 들면서 “지리산에는 관광객 탐방로만 있고 아예 도로가 없다. 그때도 아침에 돌풍을 동반한 비가 오지 않았으면 불이 크게 번졌으리라 본다”고 했다.

“비 안 왔다면 지금까지 전국서 불 끄고 있을 것”


남 청장은 지난주 전국에 산불이 난 상황에서 비가 오지 않아도 대응 가능한 수준의 인력과 장비를 확충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산림청 헬기는 3000~8000ℓ 용량의 물탱크를 보유했지만 다른 헬기는 500~1000ℓ만 실을 수 있어 대응력에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주 전국 34곳 동시 산불을 기준으로 보면 70대의 대형, 초대형급 헬기가 필요한데 현재 산림청은 중소형 헬기까지 포함해 48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만약 4일 저녁부터 5일 사이에 비가 안 왔다면 그때 불을 오늘도 전국에서 끄고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임도를 통해 지상 작전을 펼칠 산림청 직할 산불 진화 인력(현재 435명)과 임도 없는 곳에 작전을 하기 위해 공중에서 투입되는 공중진화대원(104명)도 더 많아야 최악의 경우에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 예산으로 불씨 제거해야”


산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영농 부산물 소각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할 필요성도 제시했다. 현재 소각을 금지하고 있지만 70~80대인 농부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소각을 하다 산불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산림청에서는 직접 파쇄기를 동원해 농촌 지역 산림의 인화 물질을 미리 없애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10일 농협중앙회, 산림조합중앙회 3자 업무 협약도 체결했다.
남 청장은 “불법이라고 하지 말라고만 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접근해 국가 예산으로 불씨를 제거하는 게 나중에 불을 끄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제가 (교수직 기간 제외하고) 행정만 40년을 했다”며 “이상적인 얘기는 쉽지만 현실에 맞는 대책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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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