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화 이미 샜는데…대통령실 “청와대보다 보안 완벽”

미국이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과 관련해 한국 국가안보실을 도·감청한 정황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기밀문서를 통해 드러나면서,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보안 취약 등에 대한 우려에도 ‘용산 대통령 시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이번 같은 ‘대형 보안사고’가 터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국방위·외교통일위·정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졸속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점이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대통령실을 정부 출범일에 맞춘답시고 국방부를 대통령실로 급히 꾸리려다 보니, 보안을 강화하는 벽면 공사 등을 새롭게 하지 못했고 보안 조치 공사나 리모델링 등도 짧은 기간의 수의계약 방식으로 급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실) 창문은 도·감청 필름을 붙여 (도·감청 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벽은 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대통령실에 들어가는 모든 선과 장비에 도·감청 장치들이 묻어 들어갔을 수 있다”며 “일체 다 점검하고 보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와 국방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한겨레>에 “통신 케이블에 접근했거나 무선 센서로 건물, 유리창, 환풍기 등을 통해 (도청)할 수 있고 사이버 침투를 통해서도 도청할 수 있는데, 대통령실을 옮기면서 건물 자체 보안성을 모두 검토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종대 전 의원은 또 대통령실이 용산 미군기지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점 자체가 크나큰 ‘보안 리스크’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용산 미군기지에는 미국의 도청, 감청 정보를 수집해서 분석하는 정보분석센터가 위치해 있다. 전세계적인 전자 감시 시스템과 신경망이 쭉 뻗어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실이 미군기지 옆에 가는 건 위험천만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 나오는 야당의 주장들은 팩트와 먼 것들이 너무 많다”며 이런 논란에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청사 보안 문제는 이전할 때부터 완벽히 준비했고,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청와대 시절 벙커는 지상으로 돌출돼 있어, 보안이나 안전은 오히려 여기가 더 안전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안이라든지 안전이라든지 이런 부분은 청와대보다 용산이 훨씬 더 탄탄하다”고 주장했다. 이진복 정무수석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히려 지금 옮긴 데(용산)가 훨씬 도·감청이 어렵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실은 문재인 정부 때 국방부·합참이었다”며 “민주당의 주장은 자기네들도 뚫렸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발등을 찍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사건을 처음 보도한 미국 <뉴욕 타임스>는 이번 정보가 “신호정보(시긴트)를 통해 나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토대로 미국이 대통령실을 도·감청한 방법을 몇가지 추정할 수 있다. 우선, 미국이 오래 사용해온 지향성 방식으로 레이저 등을 도·감청 대상이 있는 장소의 창문이나 벽에 쏘아 반사된 음파로 대화 음성을 복원하는 방식이다. 유·무선 장치를 통한 도청의 경우 도청 낌새나 사전탐지활동을 통하여 예방할 수 있으나, 도청장비의 설치 없이 레이저·적외선을 이용한 외부에서의 도청은 막기가 더 어렵다. 레이저·적외선 도청은 외부의 다른 건물이나 차량에서 도청 대상의 창문이나 벽으로 레이저나 적외선을 쏘아 창문·벽의 진동을 수신기에서 분석하여 음성 대역으로 변환, 도청하는 방법이다. 이 방식은 레이저·적외선 유효 사거리 10㎞ 이내에서 도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레이저·적외선 방식 도·감청을 막을 가장 근본적인 대응책은 특정 구역 내부를 사방으로 방청 처리해 전파 유출을 원천 차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실 사무실 내부에 녹음기나 마이크를 설치해서 대화 내용을 직접 빼내는 방법도 있다. 10년 넘게 국방부 청사였던 현재 대통령실 청사에 도·감청 장치가 있기 어렵지만, 지난해 대통령실 이전 공사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지난해 5월 대통령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기면서 내부 시설 공사를 급하게 하는 과정에서 김병기 민주당 의원,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 등이 외국 정보기관이 벽이나 천정 등에 도청장치를 설치했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국가정보원 출신인 김병기 의원은 대통령실 공사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자재를 나르고 돌아다니는 사진을 제시하며 “내가 만약 외국의 정보기관원이면 저기다가 도청장치를 설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육군 중장 출신인 신원식 의원은 김 의원 발언에 동의하며 “공사가 끝나고 나면 현 시설에 대해 아주 강도 높은 보안 진단을 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근무자 스마트폰에 스파이웨이를 몰래 심어두면 통화 내용, 문자메시지 파악은 물론 주변 소리 녹음 등을 주인 몰래 할 수 있다. 스마트폰 전원을 꺼놓아도 주변 도청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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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