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백악관은 파병 확인 않은 채 “며칠내 설명하겠다” 입장만
대통령실은 이날도 “동맹 및 우방국들과 긴밀히 공조”하겠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미국·영국은 아직 파병을 확인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한국의 우방국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 국가는 왜 파병이 사실이라고 바로 확인하지 않는 것일까. ‘북한군 파병설’에 대한 정보 판단 절차가 덜 끝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내외 정보기관은 다양한 첩보(정보 생산을 위해 다양한 출처로부터 획득된 처리되지 않은 자료)를 다듬고 평가·해석해서 정보(가용한 첩보를 수집, 처리, 평가 및 해석한 결과로 획득된 지식)로 만든다. 이후 다양한 정보를 모아 종합적으로 융합·평가해 해당 사안의 진위를 가리고 사실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지난 4일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 키이우포스트는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전선에서 북한군 6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각) 연설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뿐만 아니라 병력까지 지원한다’고 주장했다.
애초 한국도 지난주 중반까지 이런 북한군 파병설에 부정적인 태도였다. 김선호 국방부 차관은 17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방장관회의 동맹국 및 파트너국 세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가 제기한 북한의 러시아 파병설에 대해 “현재까지는 민간인력 지원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김 차관은 이날 나토 본부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우리는 병력이 아니라 인력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유의미하게 보고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인력일지, 병력이 될 것인지 등은 좀 더 많은 정보가 종합돼 융합·평가되면 (진위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북한이 지원했더라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란 국방부 판단이 하루 만에 바뀌었다. 지난 18일 오후 국가정보원은 ‘국정원, 북한 특수부대 러-우크라 전쟁 참전 확인’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국정원은 “북한군의 동향을 밀착 감시하던 중 북한이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러시아 해군 수송함을 통해 북한 특수부대를 러시아 지역으로 수송하는 것을 포착, 북한군의 참전 개시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은 극동 지역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롭스크·블라고베셴스크 등에 분산돼 현재 러시아 군부대에 주둔 중이며, 적응 훈련을 마치는 대로 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이 ‘북한군의 참전 개시 확인’의 근거로 제시한 북한 특수부대의 러시아 지역 수송은 지난 8~13일 있었다. 김선호 차관은 연합뉴스 기자를 만난 지난 17일 이를 파악했을 텐데도 “민간인력 지원 가능성이 있다”고 했었다. 대북정보 활동의 주축인 두 기관이 하루 만에 이렇게 상반된 정보 판단을 한 이유에 대해 정부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18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관련 증거로 ‘북한 병력 수송 러시아 함정 활동’ 등 위성사진 3장을 제시했다. 국정원이 국방부보다 신뢰도 높은 위성 사진을 독자적으로 확보할 방법은 없다. 미국 첩보위성과 정찰기가 찍은 영상을 정보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에 보내면 한국군 영상 분석관과 주한미군이 분석·판독한 영상자료를 국정원이 가져와 이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보도자료에서 “북한군이 현재 러시아 군부대에 주둔 중이고 적응 훈련을 마치는 대로 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수천㎞ 떨어진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극동 지역에 주둔 중인 북한군들이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이동할 경우 참전 개시나 파병으로 판단할 수 있다.
국정원 주장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현재 북한군은 러시아에 ‘파견’된 상황이고 ‘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파병)는 앞으로 있을 상황에 대한 예상이다. 국정원 보도자료를 기준으로, 파견은 ‘사실’이고 파병은 ‘의견’이라, ‘참전 개시 확인’ 보도자료는 사실과 의견을 뒤섞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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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