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20% 고령운전자, 면허반납률 2%… '조건부 면허제' 힘 받나

계속된 고령 운전자 사고 도입 여론 불 지펴
능력 평가 면허 차등 허용… '조건부 면허제'
"고령화 사회 불가피, 이동권 취약 대안 필요"

▲ 1일 밤 역주행 교통사고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교차로 인근. 사고 충격으로 부서진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15명의 사상자(사망 9명)가 발생한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를 계기로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고 원인이 아직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사고를 낸 운전자가 만 68세의 고령으로 일단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때 도입을 저울질했다가 노인 차별 등의 비판에 하루 만에 철회한 '고령 운전자 조건부 면허제' 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3년 연속 증가세


고령 운전자의 조작 미숙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전북 순창 농협 조합장 투표 중 70대가 몰던 1톤(t) 트럭이 유권자들에게 돌진해 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친 사고가 대표적이다. 올 2월에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서시장에서 70대 운전자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추돌사고를 내 1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통계상으로도 작년 교통사고 5건 중 1건은 고령 운전자 사고였다.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3만9,614건으로 3년 연속 증가세고 집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로 전년(17.6%) 대비 올랐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사망자 역시 지난해 745명으로 1년 전보다 10명 늘었다. 반면, 사고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2018년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제도를 도입했지만 면허 반납자 수는 매년 2%가량에 불과하다.

"대안 마련해 조건부 면허제 필요"


이에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은 지난 5월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의 세부 내용 중 하나로 고령 운전자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고령자 운전 능력을 평가한 뒤 특정 기준에 미달하면 야간·고속도로 운전 등을 제한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과도하게 고령층 이동권을 제한한다" "혐오와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는 반발이 터져나오자 정부는 하루 만에 '고령 운전자'를 '고위험'으로 수정하고 "특정 연령을 대상으로 한 건 아니다"라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 고령 운전자의 면허증 자격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고령화 추세에 따라 나이 많은 운전자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지난해 10월 경찰청 지원을 받아 도로교통공단이 발간한 '고령 운전자 대상 조건부 운전면허제도 도입에 대한 수용성 연구'에는 "2025년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자 운전면허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보고서는 고령 운전자의 적성검사 주기 단축 및 운전면허 반납 등 안전 제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면허 반납률이 2% 수준으로 저조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물론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적잖다. 무엇보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지방 노인들의 이동권 보장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는 대도시에 비해 농어촌 지역 고령자들의 면허 반납률이 저조한 원인이기도 하다. 또 운수업 종사자들 상당수가 고령이라는 점, 노인 차별이나 혐오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정부와 함께 조건부 면허제의 기본 틀을 마련하고 있는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 소속 장효석 책임연구원은 "고령 운전자만 대상으로 하기보단 '고위험 운전자'에 대해 운전 능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올해 안에 관련 기준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위험 운전자 중 대부분이 고령 운전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게 사실이다. 장 책임연구원은 "당사자 생업을 고려한 조치 기준을 추가로 수립하고 대체 교통수단을 지원하는 방안도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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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