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반란 진압 중 전사한 김오랑 중령 유족, 국가에 책임 묻는다

반란군 막다가 사망→2년 전 전사 인정
부인, 전두환 상대 소송 준비 중 실족사
유족, 45년 만에 국가 상대 손배소 제기

▲ 1978년 고 김오랑(왼쪽) 당시 소령이 정복을 입고 부인 백영옥씨와 찍은 사진. 김오랑중령추모사업회 제공
"남편이 '오늘 저녁도 못 들어갈 것 같아, 미안해' 급히 전화를 끊었다. '미안해'라는 말이 계속 귓전에서 맴돌았다."


(고 김오랑 중령 부인 백영옥씨의 시)
김오랑 중령(당시 소령)은 1979년 12월 12일 밤 아내에게 남긴 통화를 마지막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육군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이었던 김 중령은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3공수여단)과 교전하다가 전사했다.


부인 백영옥씨는 남편 사망의 '진실'을 찾고자, 사령부 사람들과 남편의 상관 등을 만나 당시의 경위를 캐물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심지어 반란군 편에 가담해 사령관실을 덮친 박종규 중령(3공수 15대대장)은 "여자인 당신이 뭘 알겠다고 찾아다니냐"며 "몹시 불쾌하다"고 역정을 냈다. 그러곤 작전 때 자신도 부상을 입었다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어 보였다.

기가 막혔다. 박종규 중령은 김오랑 중령의 육사 선배이자, 군인아파트 이웃이었다. 평소 가족끼리도 친하게 지낸 사이다. 그랬던 선배가 후배를 쏘아놓고도 아무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나온 것이었다. 박 중령은 "김오랑이 응사해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기를 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국가가 은폐한 죽음, 진실은


진실은 이랬다. 1979년 12월 13일 새벽 최세창 준장의 3공수 반란군이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사령관 집무실로 진입을 시도했다. 김 중령은 이들을 저지하려 사령관 집무실에서 반란군과 대치했고, 총격전 끝에 집중 사격을 받고 대량 출혈로 사망했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이 바로 김오랑 중령이었다. 백영옥씨는 뒤늦게 출간된 자신의 에세이('그래도 봄은 오는데')에 이렇게 썼다. "남편은 작은 사고에 목숨을 잃은 군대 내 흔히 있는 죽음으로 포장돼 왔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이 사고로 인한 죽음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에 대한 외면이며 거역의 표현이다."

왜곡된 진실을 국가가 인정하기까지 43년이 걸렸다. 김오랑의 죽음은 2022년에서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순직이 아닌 전사로 바로잡혔다.

'정당방위 사살' 둔갑에 시신 방치도


조사 결과, 반란군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김 중령이 먼저 총을 쏜 것으로 입을 맞췄고, 당시 상황을 추적할 수 있는 총격 흔적을 가리려 합판을 붙이는 등 현장을 훼손하고 사망 현장 사진도 남기지 않았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결정문엔 "망인의 죽음을 개인적 죽음으로 축소하고 불법적 살상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던 신군부의 기만이 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적혔다.

시신은 뒷산에 방치돼 있다가 두 달이 지나서야 가족과 동료들의 노력으로 현충원에 안장됐다. 보안사령부는 시민 안장마저도 방해했다. 당시 보안사는 시신을 가족에게 넘기면서 부대장(군부대 주관 장례)을 하지 말고, 국립묘지에 안장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국가가 김 중령의 죽음을 은폐하는 동안 가족들은 고통에 시달렸다. 노모는 김 중령 사망 2년 후 숨졌고, 울분 속에 살던 큰형 역시 그 이듬해 사망했다. 남편 사망 소식에 충격받아 실명한 부인 백영옥씨는 전두환·노태우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하던 중 1991년 실족사했다.

김 중령 조카인 김영진(67)씨는 9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삼촌의 죽음이 전사로 인정된 것이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았고, 영화 덕분에 억울함이 널리 알려진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며 억울해했다. 유족들은 여전히 국가가 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죽음 후 집안에 우환이 많았는데 숙모와 우리 부모(김 중령 형제들)들이 살아 있을 때, 진작 국가에서 바로잡아 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45년 만 국가에 책임 묻는 유족들


결국 유족들은 5일 국가를 상대로 5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김 중령 사망 45년 만이다. 유족들은 김 중령의 사망 책임뿐 아니라 사망 경위조차 조작·은폐·왜곡한 책임을 국가에 묻겠다는 입장이다. 김오랑중령추모사업회의 김준철 사무처장은 "군사반란에 적극 대항했던 한 군인의 죽음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국가의 위자료 지급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법원은 군사 반란 당시 반란군에 저항하다 숨진 정선엽 병장 유족이 낸 손배소에서 유족 1인당 2,000만 원씩 총 8,000만 원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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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