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주여성, 아들에게 남편 대신 자신의 성·본 물려줘

남편도 찬성...법원, 청구 허가
한·베트남 정체성 모두 희망

한국 남성과 결혼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해 자신의 성씨와 본관을 만든 베트남 여성이 아들의 성씨와 본관을 자신과 동일하게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

23일 의정부지법은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 여성 A씨가 아들의 성과 본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게 해달라며 낸 청구가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보통 자녀의 성·본 변경은 재혼 가정에서 계부나 양부의 성을 따르거나, 이혼 또는 사별 후 엄마가 혼자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에서 이뤄져 이번 청구는 이례적이었다.

지난 2016년 베트남 하노이대에 재학 중이던 A씨는 당시 베트남 여행을 온 우리나라 국적의 B씨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한국에 들어온 A씨는 경기 양주시에서 가정을 꾸리고 2018년 아들을 출산했다. 당시 아들은 남편의 성과 본을 따라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됐다.


이후 2021년 A씨는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했고, 지난해에는 현재의 성 'A'와 본을 창설해 개명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이 한국과 베트남의 정체성을 모두 가지도록 교육했으며 매년 방학에는 베트남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A씨는 자녀가 어머니 나라의 혈통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고 대한민국에서 외국 이주민 출신 여성이 창설한 성본의 후손이 대대로 이어지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에 법원에 성본을 아버지의 것에서 어머니의 것으로 변경해달라는 '자의 성과 본의 변경 허가'를 청구했다.

남편인 B씨 역시 자녀의 성본 변경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B씨는 "나이 많은 자신을 믿고 머나먼 타국으로 이주해온 점 등에 대해 아내에게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평소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하고 있으며 양성평등 가정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성·본 변경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크다고 봤다.

당초 베트남 후손임을 짐작할 수 있는 성·본으로 바꿀 경우 아들이 불필요한 편견에 시달릴 수 있음을 우려를 했지만 재판부는 "(이러한 우려가) 가족 구성원의 개인적 존엄과 양성평등이라는 헌법상 이익을 무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A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어 "자녀의 성·본 변경이 반드시 가족관계가 달라지거나 새로운 가족관계가 만들어졌을 때만 가능하다는 규정은 없다"며 "이번 성씨 변경으로 가족 사이의 정서적 통합이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한편, 2021년 기준 국내 다문화가족 자녀의 수는 29만명에 이른다. 지난 5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출생아 중 다문화 가정 출생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7년 5.2%에서 2021년 5.5%로 증가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은 16만9000명으로 2022년 기준 전년 대비 5.4%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초중고 전체 학생 수는 감소하는 와중에 다문화 학생 수는 지속 증가하며 2013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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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