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유포 빌미 돈 갈취하는 ‘몸캠피싱’
검거 어렵고 잡아도 유포 피해 커
청소년 대상 범죄 심각…영상 빌미로 피해자 데려오라 협박
#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을 다니는 30대 A씨는 인스타그램 스타다. 몇십만 팔로워 보유자는 아니지만, 호감을 표현하는 여성들로부터 하루에 2~3건의 인스타그램 메시지(DM)를 받는다. A씨는 지난달 자신에게 DM을 보낸 여성 중 이상형에 들어맞는 사진을 프로필로 걸어둔 B씨와 연락을 시작했다. 며칠간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진 B씨는 “카카오톡으로 넘어가자”며 자신의 아이디를 알려줬다. B씨는 A씨와 카톡 대화를 하던 중 화상통화를 걸어 왔다. 이를 수락한 A씨는 서로의 신체 부위를 보여주자는 제안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통화 도중 영상 화질이 급격히 나빠졌고, B씨는 특정 파일(.apk)을 설치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대로 A씨가 파일을 클릭한 순간,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사장님, 음란행위 녹화됐습니다. 단톡방에 유포합니다.”
급증하는 몸캠피싱…‘디지털장의사’ 업체 문전성시
A씨가 당한 건 전형적인 ‘몸캠피싱’이다. 몸캠(Body cam)과 피싱(Phishing)의 합성어인 몸캠피싱은 사이버 공간에서 남성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해 자위 등 음란행위를 유도한 뒤, 이를 촬영해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식으로 돈을 갈취하는 범죄를 말한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몸캠피싱 범죄 건수는 총 4313건으로, 2018년(1406건) 대비 약 3배 이상 증가했다.
몸캠피싱 범죄가 늘면서 피해를 본 이들의 유출 사진을 온라인에서 삭제해주는 ‘디지털장의사’ 업체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들 업체는 피해자 의뢰를 받아 온라인에 유포된 그들의 사진 및 동영상을 삭제해주는 일을 한다. 이와 함께 피해자의 사진이나 영상과 함께 전화번호부까지 입수한 범죄자가 사진 등을 유포하지 못하도록, 범죄자가 확보한 전화번호부 파일을 해킹한다. 전화번호부에 계속 허수의 번호를 삽입해 유포를 시도하면 존재하지 않는 전화번호로 영상이 전송되도록 작업하는 것이다.
업계에서 가장 큰 규모인 C회사는 몸캠피싱 피해자가 늘면서 24시간 운영하는 상담 업무가 포화에 이르렀다. C회사가 자체적으로 집계한 ‘내부 상담 건수’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과 2월 상담 건수는 각각 900건, 1200건이다. 이는 지난해 동월 대비 101%, 214%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1년간 상담 건수는 8000건으로 2021년 5600건에 비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C사 관계자는 “상담 건수는 매 분기,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온라인이든 유선이든 상담을 원하는 피해자들이 절실한 마음으로 디지털장의사 업체를 찾는다”면서 “코로나로 이성을 비대면으로 접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몸캠피싱도 같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급증한 몸캠피싱의 원인 중 하나를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관계 확대로 꼽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비대면 사회가 일상이 되면서 몸캠피싱을 포함한 모든 온라인 범죄가 다 늘었다”고 말했다. 김현걸 한국사이버보안협회 회장은 “몸캠피싱은 1차적으로 외부보다 내부에 사람이 많고,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을 때 발생한다”며 “코로나 방역 지침이 엄격해질수록 몸캠피싱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중고나라 잡범 취급”…경찰 불신하는 피해자들
이처럼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수사와 검거는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몸캠피싱 범죄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반면 검거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검거율은 2018년 약 20%로 집계됐지만, 지난해는 10.8%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자구책을 찾아 나서고 있다. 디지털장의사업체 문의가 빗발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피해자들의 모임인 네이버카페 ‘몸캠피싱피해자모임’(몸피모)에 가입한 회원은 이날 기준 12만명을 훌쩍 넘는다. 이들은 범죄자들의 몸캠피싱 수법과 악성코드 파일을 보내는 SNS 아이디 등의 정보를 공유한다. 공지 게시판에는 피해를 입었을 때 대처 방법을 매뉴얼로 만든 글이 게재돼 있다. 경찰에 신고하기 전 해야 할 일과 준비해야 할 증거 리스트도 올려져 있다.
몸피모 카페 운영자 D씨는 매일 약 10건의 피해 사례를 상담한다고 전했다. 그는 피해자 중 전문직 종사자도 많다면서 “범죄자들은 전화번호부를 해킹하면서 저장된 이름을 보고 그 사람의 직업을 유추한다”면서 “상담했던 분 중 40대 검사가 있었는데 이분은 재정적 여유도 있었지만 사회적 명예가 중요했던 분이라 1억5000만원까지 뜯겼다”고 말했다. D씨는 그러면서 “몸캠피싱은 직업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범죄인데 보이스피싱과 달리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카페 회원들은 몸캠피싱에 무관심한 미디어와 피해를 신고해도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는 경찰들에 대한 불만이 카페를 활성화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카페 회원은 “경찰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은 중고나라 잡범 수준,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다른 회원들도 “경찰에 신고해도 범죄자를 검거하거나 영상 유포를 막아주지 않는다. 범죄자 서버가 해외에 있어 잡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했다.
실제 경찰이 해외에 서버를 둔 범죄 조직을 검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에 이용되는 서버가 외국에 있으면 해당 국가에 공조 수사를 요청해야 하는데 국가 간 사법 체계가 달라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런 상황을 피해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못해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은 범죄 조직이 하나의 범죄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범죄를 좇다 보면 그 조직이 몸캠피싱도 저지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번 검거 시 여러 명을 잡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영상이 유포되는 것을 막는 것인데 경찰이 하는 일은 범죄자 검거에 집중된다. 그렇다보니 피해자들이 불가피하게 사설 업체를 찾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변호사 사무실을 두드리는 피해자도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김응철 그리핀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경찰이 범죄자를 검거하지 않는 이상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다. 범죄자가 특정되면 민사소송을 걸어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순 있지만 그전에는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법적 대안이 없다”고 설명했다. 정현진 안팍 법무법인 변호사도 “피해자들이 범죄자로부터 협박을 받는 상황에서 변호사를 찾지만 일단 경찰이 범죄자를 잡아야 공갈협박죄를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등 피해 느는데…‘채팅하지 말라’가 해법?
청소년 대상 몸캠피싱 피해가 확산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지역 경찰청들은 각각 예방 매뉴얼을 배포했다. 그러나 매뉴얼은 기본적으로 채팅 자체를 피하라는 내용을 주로 하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한 고등학생의 피해 사례를 언급하며 첫 번째 예방책으로 ‘음란채팅 하지 않는 것’을, 다음으로는 ‘랜덤채팅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예방책에 대해 “음주 운전 사고가 발생하니 아예 운전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실효성 부족을 지적하고, 범죄자에 대한 근본적인 처벌 강화와 청소년 대상 미디어 교육 등을 주문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는 “유포된 동영상을 보는 사람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청소년에 대한 성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거나 다운만 받아도 범죄지만, 실제로 처벌 정도가 경미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미선 동양대 경찰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미디어 사용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미디어를 어떻게 다루고 활용해야 하는지, 미디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도 “랜덤채팅 앱을 사용하는 연령대가 낮아지고 채팅앱에 대한 청소년 접근성이 높아진 만큼 사용법에 대한 교육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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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