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일주일 최대 80.5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집권 2년차 최대 국정 과제로 내건 노동개혁이 ‘과로사회’를 우려한 엠제트(MZ) 세대 등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재검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고용노동부가 입법 예고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관련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엠제트 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이날 오전 서면 브리핑 자료를 내어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 6일 현재 주 단위 최대 52시간으로 한정한 노동시간을 노사 합의에 따라 월(연장근로 52시간)·연(440시간) 단위로 푸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4주 평균 근무시간은 64시간 이내를 유지하지만, 주 7일 근무 기준으로 최대 80.5시간(주 6일 기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관리 단위 칸막이를 열어두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이 ‘법안 보완’을 지시한 것은 ‘우군’이라고 여긴 청년 노동자까지 비판에 가세하며 여론이 악화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집중해 일하고 몰아서 쉰다’고 개편방안을 홍보했으나, 노동계에서는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비현실적 방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청년이 주축인 엘지(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 등 8개 노조 연합체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는 지난 9일 “주요 선진국에 견줘 평균 노동시간이 많은 한국이 연장근로 시간을 늘리는 것은 노동조건을 개선해왔던 국제사회 노력에 역행한다”며 정부 개편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정부 개편방안은 근로시간 선택권, 건강권, 휴가권 등 삼박자로 가는 것인데, ‘장시간 근로’ 프레임으로 우려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를 불식할 수 있도록 법안을 튼실하게 만들라는 것이 대통령의 지시”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엠제트 세대가 근로시간에 민감하다 보니 오해를 사는 측면이 있어서 개정안 취지 등을 포괄적으로 소통하고 대화하고 재검토하라는 지시가 나온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윤 대통령의 지시 뒤 입장문을 내어 “현재 입법예고 기간인 만큼 청년 등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은 소통 부족 등으로 개정안이 오해받는다고 엄호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가짜뉴스와 세대 간 소통 부족 등으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장시간 근로를 유발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오는 16일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전문가 등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열겠다고 했다. 야당은 정부의 개편안을 아예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주 69시간제는 대통령의 ‘주 120시간 노동’이라는 퇴행적 노동관에서부터 비롯됐다”며 “출발부터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한덕수 총리는 대통령과 엇갈린 발언을 해 혼선을 낳았다. 한 총리는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관련 질문에 “큰 프레임은 변화가 없다. 정책 원점 검토는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지시와 엇박자’라는 기자들의 거듭된 물음에 “대통령과 통화하고 한 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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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