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서 지내다 숨진 태국인, 담배·커피값 빼곤 월급 모두 가족에게

관광비자로 입국 뒤 돼지농장서만 일해…월급은 가족에 대부분 송금

▲ 숨진 태국인 근로자가 지내던 돼지농장 숙소의 모습. 돼지우리 한 귀퉁이에 있는 매우 열악한 환경의 숙소에서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경기 포천의 한 농장주가 숨진 태국인 노동자의 시신을 유기한 가운데, 수사 당국이 농장 내 불법 행위 전반에 대해서도 조사에 나섰다. 이 노동자는 열악한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며 월급 대부분을 고국의 가족에게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8일 “피의자의 범행동기나 수법 등은 상당 부분 파악된 상태이고 부검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관계 기관과 함께 다른 불법행위는 없었는지 폭넓게 살피는 중”이라고 밝혔다.


시신을 유기한 농장주 A씨는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불법체류자)를 고용한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하며 혐의를 자백한 상태다.

당일 아들이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A씨는 시신을 유기했고 이때 아들도 가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포천시 등 유관 기관은 이 농장의 공기 질 등 환경 상태와 고용 형태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추가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 이에 대해서도 처벌할 방침이다.

숨진 태국인 근로자 B(67)씨는 10여년간 돼지우리 한 귀퉁이에 있는 매우 열악한 환경의 숙소에서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이러한 환경이 B씨 사망에 영향이 없었는지 당국은 살피고 있다.

2013년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B씨는 줄곧 이 농장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월 100만원 초반대 급여를 받았으며 숨지기 직전에는 180만원 정도 받았다. 이중 담배와 커피값 정도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태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했다.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한 B씨는 이웃이나 다른 태국인 근로자와도 거의 교류하지 않고 홀로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농장서 키우는 돼지는 1000여마리로, 이 중에는 90여마리의 모돈(어미 돼지)이 있다. B씨는 돼지농장 전체의 분뇨를 처리하는 고된 일부터 밤낮으로 모돈을 돌보고 출산 등을 관리하는 까다로운 일까지 도맡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의 B씨 가족에게도 사망 소식이 전달됐으며, 가족이 시신 수습을 위해 한국에 올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의정부지방법원은 전날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된 농장주 A씨에 대해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A씨와 아들을 형사 입건해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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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