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교수는 여전히 세계 학계가 꼽는 한국인 첫 노벨 화학상 수상 후보감이다. 나노 연구 분야에서만큼은 스스로 ‘정상급’도 아닌 ‘정상’이라고 말하는 그다. 그를 정상에 올려놓은 건 나노다.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의 아주 작은 단위다. “물질을 작게 쪼개고 쪼개서 나노의 세계로 들어가면 눈으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고 현 교수는 말했다.
Q : 작게 만드는 게 왜 중요합니까.
A : “나노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도우미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라면 칩 사이즈가 점점 줄어들어야 같은 면적에 넣을 수 있는 게 더 많아지거든요. 그러다 보면 한계가 와서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어요. 그때 나노가 구원투수로 들어가 한계를 돌파하는 겁니다.”
Q : 최고의 성과, 최고의 작품은 뭔가요.
A : “QLED TV의 바탕이 된 기술이죠. 반도체를 나노 입자로 만들어 자외선을 쬐면 형광 빛깔이 나오거든요. 입자 크기가 색을 결정하는데, 여러 사이즈가 섞여 있으면 선명하지 않고 흐리멍덩한 색이 나오겠죠. 완전히 선명한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입자 크기가 똑같아야 해요.”
균일한 나노 입자를 만들어내는 그의 논문 2편은 5000회 넘게 다른 학자들에게 인용됐다. 그야말로 ‘원천기술’이기 때문에 나노 입자를 만드는 어떤 연구도 그의 연구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Q :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디서 찾습니까.
A : “어린아이처럼 계속 묻는 겁니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캐내는 작업이 과학자에겐 전부’라고 얘기해요.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읽어야 해요. 저는 남들의 논문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게 있을 때마다 학생들이 있는 카톡에 올려요.”
Q : 어려서부터 천재였습니까.
A : “천재는 아니에요. 좀 독특한 건 분명해요. 항상 들떠있거든요. 늘 약간은 흥분되고 각성된 상태라 커피도 마시지 않아요. 그 밖에 특이하다 할 만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커리어를 정했다는 것일까요. 시골 학교에 다니다 우연히 군내 과학 경연대회에 나가 은상을 받았는데 ‘나는 과학에 소질이 있구나’ 생각한 거예요. 순진했죠.”
대구시 달성군의 농가 출신 소년은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 때는 수강생 절반 이상이 0점을 받는다는 응용수학 과목에서 100점을 받아 교내에 작은 전설을 남겼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화학 전공으로 박사가 된 그는 서울대 공대 교수가 됐다.
Q : 자연과학대가 아니라 공대 교수가 된 계기는.
A : “가장 잘한 일이 공대 교수가 된 겁니다. 당시만 해도 자연과학과 공학 사이의 벽이 굉장히 높았어요. 공과대학에서 보기에 저는 완전히 ‘듣보잡’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공대에 계시던 분들이 제가 연구하는 분야가 필요하다고 보고 저를 뽑아준 거죠. 공대 교수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Q : 어릴 때부터 공부에 매진하는 한국 학생과 학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A : “결국 나중에는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끝까지 갈 수 있어요. 어떤 공부를 하든 기초를 튼튼하게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좋은 성과는 협력에서 나오더군요.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고 좋은 인간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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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