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분향소 앞 ‘연합 성찬례’도
서울 성북구에 사는 김재광(59)씨는 인적이 드물던 오전 9시30분쯤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추모글이 적힌 메모지를 살펴보며 중간중간 걸음을 멈춘 김씨는 “크리스마스에는 다시 한번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지내야겠다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가 도저히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1997년생인 김씨의 딸은 세월호 참사로 숨진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나이가 같은 ‘세월호 세대’다. 이번 참사 당일에는 이태원을 가려다 몸이 좋지 않아 약속을 미룬 덕에 화를 피했다고 한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강모(49)씨도 참사 이후 처음 이태원을 방문했다. 남편과 함께 오려고 시간을 맞추다 보니 어느덧 성탄절이 됐다는 그는 “크리스마스를 의미 있게 보내려고 왔다”면서도 “생각보다 이곳 풍경이 너무 쓸쓸해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참사가 벌어진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많은 점포들이 문을 닫고 볕도 잘 들지 않아 어두운 분위기였다. 얼마 전까지 이태원역 1번 출구를 가득 메웠던 조화, 촛불 등의 추모품은 대부분 시민분향소 등으로 옮겨졌고, 이젠 벽면에 붙은 추모글들과 탁자 하나 크기의 추모 공간만 남아있었다. 몇몇 시민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추모글들을 촬영해 갔다.
많은 이들이 인근 녹사평역 이태원광장에 설치된 희생자 합동분향소로도 발걸음을 옮겼다.
강민휘(38)씨는 “매년 성탄절 때는 교회 예배가 일순위지만, 올해는 이곳부터 들러야겠다는 생각에 일찍 분향소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직접 보니까 더 안타까고 미안하다”며 분향을 마친 뒤에도 한동안 영정 앞에 머물렀다.
오전 11시30분쯤부터는 합동분향소 앞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대한성공회 나눔의집 협의회 등이 주최한 ‘성탄절 연합 성찬례’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참사 희생자인 고(故) 진세은씨의 언니 진세빈씨는 발언대에 올라 “작년에는 벽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꾸며 놓고 사진을 찍었다”며 동생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자매는 올 연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고 한다. 진씨는 “지금쯤이면 폴란드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어야 했다”며 “아직도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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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