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약방문' 서울시 반지하 대책엔 '사람'이 안 보인다

10년 전엔 '반지하 허용 후 제한'..이번엔 '원칙적 금지' 표방
공공물량 확보 등 구체적 이주 방안 없이 '없애는 데'만 초점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기존 거주민 지원책 찾는 게 중요"

▲ 필사적 탈출의 흔적 경기 군포시 산본1동 한 반지하 주택에 11일 이번 집중호우 때 침수돼 방범창을 부수고 탈출한 흔적이 남아 있다. 연합뉴스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는 서울시의 방침이 이번에는 현실화될 수 있을까.

지난 8일부터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목숨을 잃자 서울시가 지난 10일 지하 공간을 주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기존 주택은 일몰제를 통해 점차 없애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미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침수 피해가 발생한 당시에도 반지하 주택을 제한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2012년 건축법 제11조가 개정됐다. ‘상습침수구역 내 지하층’은 지자체가 심의를 거쳐 건축을 불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 대책이 반지하를 ‘원칙적 허용’한 후 일부를 골라내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대책은 ‘원칙적 금지’를 표방한 셈이다.


서울시의 대책이 발표되자 현재 반지하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지원 등 구체적 이주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번 대책 역시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 대안 없이 반지하 주택만 없애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반지하 거주민이 옮겨갈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물량이 마련돼야 하는데 (서울시 대책은) 이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서울시 대책은 ‘선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원래부터 반지하 주택 수는 줄어드는 추세였기 때문에 신규 건축 금지 조치에 대해 형식적인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반지하 가구는 33만가구로 2005년 59만가구, 2010년 52만가구와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

최 소장은 “(2005년) 주차장법이 개정된 후 (1층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2층부터 방이 들어서 있는) ‘필로티 구조’ 주택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규 반지하를 막는 것보다 기존 거주민들에 대한 지원책을 찾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지하 주택을 없애는 것에만 집중하면 고시원, 옥탑 등 다른 유형의 ‘안 좋은 집’ 비중이 커지는 풍선 효과가 일어날 우려도 있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센터장은 “반지하에 살 수밖에 없는 환경적 조건을 해결해 주지 않으면 또 다른 악성 주택이 반지하를 대체할 것”이라면서 “반지하를 없애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중심으로 정책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지하 주택에 대한 수요가 완전히 사라지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다. 저렴한 가격으로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살고자 하는 저소득 다인 가구 등이 반지하 주택의 주 수요층인데, 이들 중에는 공공임대 지원 대상이 될 정도로 경제적 최저계층이 아닌 경우도 많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주거정책연구센터장은 “공공임대 대상자 기준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다른 곳(지상층)으로 이사를 가면 임대료를 지원하는 등 유인책을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 물이 찬 반지하는 다시 쓰기 힘들다”면서 “이재민들에게(LH 장기 미임대 공실 등을 활용해) 임시주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이미 허가된 지하·반지하 주택은 10~20년의 유예 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애는 ‘일몰제’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공공임대 등 대체 주거지로 전환될 때까지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반지하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고려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당장 반지하에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차수판’(물막이판) 설치라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 지하·반지하 20만여가구 중 침수 방지 시설이 설치된 곳은 지난해 말 기준 9만5000곳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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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