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투쟁 최재형 장남 최코루리 고려혁명군 기록 발견

러시아 연해주 항일운동 비밀 풀려

최재형 선생은 1908년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해 유인석, 홍범도, 안중근 등 의병장을 도와 의병투쟁을 한 인물이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하얼빈의거 배후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경술국치 후 연해주에서 직접 반일무장단체 독립단을 조직해 단장으로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특히 그의 장남이 기병 200명, 보병 1000명을 이끄는 러시아 혁명군 직속 고려혁명군 사령관이었다는 기록 등을 발견한 것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이태룡 소장은 “㈜미래엔(Mirae N)과 전국 주요 독립운동가를 정리해 초·중등 교사와 학생들의 학습자료 제작을 위한 공동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일본 비밀기록인 ‘일본 외무성기록’ 속에 최재형 선생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일본 비밀문서는 조선총독부 경무총장·간도총영사가 내각총리·외무대신에게 보고한 중요 문서로 이를 살펴보면, 최재형의 장남 최 코루리(최고려), 러시아 적군(볼셰비키혁명군) 직속 고려혁명군 사령관(『일본 외무성기록』. 1922년 11월 10일)이라는 기록이 나왔다.

“작년 11월 중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좌두(金佐斗), 이용(李鏞), 김하석(金夏錫), 김규면(金奎冕), 김만겸(金萬謙) 등 불령선인이 주동이 되어 무력적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독립단’을 조직하여 단장에 최재형, 재무부장에 허만수(許萬洙)를 임명하여,”

“적군이 지난 10월 15일 니콜리스크에 침입 후 치타와 블라고베셴스크 지방에 있던 고려혁명군의 일부 약 1,200(기병 200, 보병 1,000)명은 적군 총사령관의 직속 부하가 되었다. 최 코루리 고려혁명군 감독사령관(전 임시정부 재무총장 최재형의 장남으로 러시아사관학교 출신)은 이들을 이끌고 니콜리스크에 도착하여 동지(同地)를 임시 본부로 정하고”라고 되어 있다.

이들 문서에는 네 가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 최재형 선생께서 1919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 피살 순국할 때까지 반일무장단체 독립단을 조직해 단장으로 활동했다.

둘째, 최재형 선생께서 고려혁명군을 원조하는 주모자이면서 일본군을 저격하는 등의 반일혐의가 있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이송하던 중 탈출을 기도해 총살당했다.

셋째, 최재형 선생이 원조하는 고려혁명군 사령관은 그의 장남 최 코루리(최고려)였고, 그는 러시아 볼세비키혁명군 직속으로 기병 200명과 보병 1000명을 지휘하였다.
넷째, 최재형 선생이 독립단원 7명에게 러시아 볼세비키혁명군 특별대대 한인 장교 출신으로부터 총 200정, 탄환 1만 발을 구해 이를 지린성으로 반출 계획이라는 사실 등이 나타났다.

이태룡 소장은 “당시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이 이끈 군정서(통칭 서로군정서)와 백포(白圃) 서일(徐一)이 이끈 대한군정서(통칭 북로군정서)에서 1919년 2월 1일(음력 1월 1일) 대일 선전포고 성격의 「대한독립선언서」(일명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후 일제와 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신흥무관학교와 연성학교를 확충 또는 신설하고, 연해주로 독립군을 보내어 무기를 구해왔는데, 최재형 선생께서 ‘총과 탄환을 구하여 수백 명 독립군으로 하여금 지린성 방면으로 운반할 계획으로 있다’는 문서의 발견은 일제강점기 간도 독립군과 연해주 독립군의 연결고리가 풀리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외무성기록’은 총 122권으로 각권 70~200건의 문서가 담겨 있어 전체 1만5000여 건의 문서인데, 아직도 영인본으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탑재돼 있다”면서 “이 속에는 일제강점기 국내는 물론 간도·상하이로 대표되는 중국, 연해주로 대표되는 러시아 방면에서의 독립운동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문서가 매우 많기에 하루빨리 번역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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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