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한미정상회담시 투자액만 발표...총수 부재로 세부 계획 확정 못해
삼성전자가 미국에 2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공언한 지 한 달이 넘도록 밑그림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주의가 격화되면서 투자 확정이 시급하지만, ‘총수 부재’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재계 안팎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론이 고조되고 있지만, 정부는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5월 21일 미국에 170억 달러(약 19조3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신축 계획을 공언했다. 현대차, SK, LG 등 국내 4대 그룹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금액(약 44조원)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특히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미국 주 정부 등과 협상이 한창인 가운데 구체적인 투자액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만큼 투자 계획 확정이 시급하다는 간절함과 함께 국내 1위 기업으로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라는 과감한 결단이었다는 평가였다.
다만 삼성전자는 공장 건설 지역과 생산제품 등 구체적인 투자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당시 이 부회장을 대신해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에 합류한 김기남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부회장은 “170억 달러 규모의 신규 대비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구체적인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투자 계획 공언 이후 한 달을 훌쩍 넘긴 현재까지도 삼성전자의 세부 투자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미국 투자 계획은 오리무중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진행 중인 미국 주 정부와의 인센티브 협상이 관건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텍사스, 애리조나, 뉴욕주 등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로선 최종 투자 지역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계획 발표가 힘들 수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계획 발표는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 이후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0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총수가 없는 상황에서 입 밖에 꺼낼 사람은 사실상 없다는 게 삼성전자 안팎의 중론이다.
이에 경제5단체를 비롯해 지자체, 여야 안팎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구하고 있지만, 청와대 기류는 여전히 확실치 않다. 여권 일각에서는 정치적 부담이 큰 사면 대신 가석방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가석방의 경우 기업활동에 제한이 있기에 사면론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공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넘어갔고,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최근 4대 그룹 대표와의 오찬에서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총수 부재로 대응이 어렵다는 취지의 김 부회장 발언에 대해 “고충을 이해한다”며 공감대를 표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TSMC 등 반도체 경쟁사들은 앞다퉈 해외 투자를 늘리며 점유율을 높이고 있어 삼성전자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톱티어인 삼성전자의 과감한 투자 없이 K-반도체 경쟁력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TSMC와 인텔 등이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투자 확정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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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