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에 왜 교보·알라딘·예스24만 '큰돈' 벌었나...'책 안 읽는 나라'의 허약성
교보문고, 2020년 책 도매업 본격 진출
근본 원인은 책 안 읽는 대한민국
매출 빅3(교보, 예스24, 알라딘)는 100만부 판매
지역서점, 독립서점들은 "책 없어 못 팔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지 하루 만인 이달 11일. 부산의 한 동네책방 대표 A씨는 도매 거래처인 교보문고에서 한강의 책을 주문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책 주문 자체를 안 받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책을 찾는 손님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일주일쯤 뒤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주문하지도 않은 한강의 책 10권이 교보문고로부터 배송된 것. 전국의 여러 동네책방들이 18일을 전후로 시킨 적 없는 한강 책을 받았다. A씨는 "'순차적으로 배송할 테니 기다리라'도 아니고 아예 주문을 막아놓더니, 서점들이 불공정 거래라고 항의하니까 주문하지도 않은 책을 임의로 보냈다"면서 황당해했다.
'한강 노벨문학상 특수'를 3대 온·오프라인 서점이 독식하고, 지역서점과 동네책방은 이 잔치에서 소외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이라는 '빅3'가 단 5일 만에 한강 작가의 책을 100만 부(전자책 포함) 판매하는 동안, 나머지 서점들은 책이 없어 주문을 받고도 판매를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왜일까. '빅3'가 모두 도소매를 겸하는, 독점에 취약한 허약한 출판 유통 구조가 이번 사태를 부른 원인으로 꼽힌다.
①2020년 도매업 진출한 교보의 급성장
도서 유통 전문가인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유통의 집중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서점 '빅3'의 시장점유율이 80%에 육박하고, 영세한 중소형 서점들은 거의 다 몰락했다"면서 "2017년 도매 업계 2위였던 송인서적이 도산하는 등 도매상도 줄었다"고 말했다. 책 유통 권력이 소수 업체에 집중되면서 지역서점들은 최근 도매업에 진출한 교보문고와 도매 거래를 많이 늘렸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교보문고와 거래하는 지역서점은 2020년 716개에서 2022년 1,100개로 증가했다. 교보문고는 28일 한국일보에 현재 거래하는 지역서점이 "2,000곳이 넘는다"고 말했다. 교보문고는 웅진 북센과 함께 전국 단위 도서 도매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책은 출판사-도매상-소매상(서점)을 거쳐 독자와 만나는데, 책 읽는 인구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서점이 줄면서 도매와 소매 모두 공룡들만 남은 게 현재의 출판 시장이다. '로또 파는 서점' 빼고는 거리에 서점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전국의 서점은 2003년 3,589곳에서 2023년 2,484곳(한국서점조합연합회)으로 20년 만에 1,000곳 넘게 줄었다.
문제는 도매 '빅2' 중 한 곳인 교보문고가 소매업도 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잘 팔리는 책'을 도매보다는 자사 소매로 공급하는 데 우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2020년 교보문고가 본격 도매업에 진출을 선언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가 당시 출판 잡지 출판N에 '대형 체인 서점의 출판유통 도매 사업, 그 의미'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 따르면 "도매 시장이 교보문고 중심으로 독과점화되면 지역서점과 중소 출판사의 피해로 되돌아올 것"이라거나 "교보문고를 통해 도매유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배고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으로 최악의 선택"이라는 우려가 출판계에서 쏟아졌다.
한편 교보문고는 "노벨상 수상 직후 증쇄본이 나오기 시작한 지난 14~17일 교보문고가 받은 한강 책 공급 물량은 평균 1만7,000여 권이었고, 이 중 2,900여 권(약 17%)을 지역서점으로 공급했다"고 말했다.
②출판사들도 무심했다...'책 생태계' 고려했어야
한강 책 출판권을 보유한 대형 출판사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의 출판사인 창작과비평사는 "(서점의) 매출 점유율대로 책을 보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도매에 기계적으로 일임하기 보다는 출판 유통 구조를 잘 아는 출판사들이 일정 부분 개입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기 수요를 예약 판매로 수용할 수 있는 온라인 대형 서점과 달리, 지역서점에서는 책을 바로 살 수 있게 구비해 놓는 게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기 파주에서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B씨도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한강 책 코너를 마련하고 싶었지만 책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한강 작가의 책을 공급하는 데가 다 메이저 출판사고 지금은 출판사가 '갑'인 상황"이라며 "동네책방이 책 생태계에서 하는 역할을 생각했다면, 일정 물량은 반드시 동네책방으로 가도록 하라는 식으로 조금이라도 배려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원근 대표는 "지역서점에 볕 들 날이 별로 없는 만큼 출판사들이 이번엔 우선적인 판매 기회를 줬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교보문고는 이번 일을 계기로 상생 경영을 우선순위에 두고 도매업체의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란이 벌어졌지만, 정부의 대응은 느리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중대형 서점과 지역 소형 서점이 상생 협력하는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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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