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 편집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편집주간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편집
김선영 출판사 핀드 대표
무명이었던 마리오 푸조를 발탁해 일약 스타 작가로 만들고, 영화로도 유명한 소설 ‘대부’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건 편집자 윌리엄 타그의 공이었다. 외설적 표현 때문에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도 편집자였던 맥스웰 퍼킨스가 고집을 부린 덕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작가 존 스타인벡은 자신의 편집자였던 파스칼 보비치를 가리켜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교사이자 악마 그리고 신”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편집자는 책과 독자를 잇는 중요한 존재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작품 뒤에도 편집자들의 노고가 있었다.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2010)와 단편소설집 ‘노랑무늬영원’(2012),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를 내며 한강과 함께한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편집주간, 창비 재직 당시 ‘소년이 온다’(2021)의 책임편집자였던 김선영 출판사 핀드 대표가 그렇다. 전화로 만난 두 사람은 한강 작가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1993년 시인으로, 1994년 소설가로 등단한 한강이 낸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다. 그래서인지 이근혜 편집주간은 한강과 시집을 함께 만든 경험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시 60여 편을 묶었는데, 대학 시절에 쓴 시도 있었다”면서 “어떤 시를 넣고 어떤 시를 뺄지에 대한 시집 구성, 시 소개 목차 등에 대해 (한 작가가) 굉장히 많이 고심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 편집주간은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투명하면서도 담담하고 힘이 넘치지만 예민하고 예리한 시적 서정이 담긴 (소설의) 문체가 이런 시에서 비롯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 편집주간이 묘사한 한강은 친절한 완벽주의자다. “굉장히 꼼꼼해요. 소설 전개 방식이나 인물 묘사, 문체는 물론이고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 이탤릭체 표기 등 서체 변화까지 꼼꼼하게 짚어가면서 쓰고, 편집부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퇴고도 많이 했어요. 미술, 영상물, 음악 등에 두루 관심이 많아서 책 표지 이미지를 고를 때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그러면서도 편집부 의견에 귀 기울여 주었지요.”
이 편집주간의 바람은 한강의 두 번째 시집을 내는 것이다. 그는 “'서랍에...'를 낸 건 (한 작가가) 20년간 소설가로 활동한 시점이라 (시집 출간에) 굉장히 심사숙고하는 모습이었다"며 "그간 써놓은 시들이 있을 테니 새로운 시집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전화로 만난 김 대표의 말. “퇴근길 강변북로 운전 중에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처음 접하고 비명을 질렀어요. 눈물이 나면서 울컥했죠. 언젠가 선생님이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했지만, 당분간은 불가능한 일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너무 비현실적이었어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는 창비 문학블로그 ‘창문’에 2013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연재됐다. 연재 담당자였던 김 대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소설을 올려야 해서 날마다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았다”며 “소설의 첫 독자라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고 말했다.
‘소년이 온다’ 초고에서 편집자로서 수정할 부분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구두점 하나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집필 방식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한 작가가) 완결성 높은 원고를 내보내길 원하기도 했고 이 소설에 대해선 특히나 진지하게 임했다”며 “온라인 연재라 (올리고 나서)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데도 원고를 미리 보내줘서 천천히 교정을 거치고 (출판사 편집부의) 의견도 반영해 높은 완성도의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고 말했다.
한강은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하면서도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김 대표는 “'소년이 온다'를 책으로 만들 때 소설과 잘 맞는다고 (한 작가가) 보여 준 그림이 있는데, 어두운 바탕에 기도하듯 모은 두 손을 그린 그림이었다”며 “디자이너, 편집부와 논의 과정에서 지금의 안개꽃 그림으로 뜻이 모였고, 선생님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연재가 끝나고 나서야 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선생님이 작품 속 인물에서 빠져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던 듯싶다”며 “너무 힘들어 보여서 건강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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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