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한동훈에 인사말도 안 시켜···한, 만찬 후 독대 재요청

당 지도부·대통령실 등 총참석자만 27명

의정 갈등·김건희 여사 문제 등 못 꺼내

“대통령 혼자 원전 얘기만” 여당 내 불만

윤 대통령·한동훈 ‘불편한 관계’만 부각

▲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찬 후 산책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여당 지도부의 24일 만찬 회동이 현안 논의 없이 빈손으로 끝났다. 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 추락의 원인으로 꼽히는 의정 갈등, 김건희 여사 논란 등 민감한 현안은 대화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한 대표가 요청한 윤 대통령과의 독대도 이뤄지지 않았다. 여당 내에서는 “대통령 혼자 원전 이야기만 했고, 말 그대로 밥만 먹는 자리였다”는 불만이 나왔다. 윤·한 갈등이 국정운영의 리스크로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날 만찬은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오후 6시30분부터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만찬에선 주로 다뤄진 주제는 윤 대통령의 체코 방문 성과였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통령은 식사를 하면서 여야 관계와 국정감사, 체코 방문과 원전 생태계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체코 순방 성과를 설명하며 “세계적으로 원전시장이 엄청 커지면서 체코가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한다”며 “2기에 24조원을 덤핑이라고 비판하는데,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고도 정 대변인은 전했다. 야당에 제기한 ‘덤핑’ 의혹을 반박한 것이다.


의·정 갈등, 김 여사 논란 등 민감한 주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한 대통령실 측 참석자는 이날 통화에서 “현안이라고 하면, 의대 증원 문제가 있는데 그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며 “당에서는 ‘쌍특검법’(채 상병 특검법·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서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법안을 (더불어민주당에서) 처리하니 여야 합의가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 참석자는 이어 “한 대표는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대통령실 측 참석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 한 대표’라고 부르며 다소 서먹한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했다”며 “대통령이 계속 재밌는 얘기를 해서 냉랭한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에선 불만도 감지된다. 국민의힘 측 한 참석자는 통화에서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하고 (윤 대통령이) 1시간20분 동안 거의 원전 얘기만 하다가 끝났다”며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궁금해하거나 우리가 논의해야 될 부분들을 하나도 얘기를 못했다”고 밝혔다. 이 참석자는 이어 “한마디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통령 혼자 얘기하시고 옆에서 맞장구 쳐주는 정도였다”고 전했다. 또 “한 대표는 얘기를 하시려고 하는 생각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의미 있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 대표는 무슨 생각을 하냐고 (대통령이)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국민의힘 측 참석자는 통화에서 “(대통령이)아예 한 대표에겐 얘기할 기회를 안줬다. 인사말씀도 안 시키더라. 도대체 진짜 밥만 먹으러 다녀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만찬에 앞서 당 지도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반갑다. 잘 지내셨느냐”고 인사를 건넸다. 윤 대통령은 식사를 시작하면서는 “우리 한 대표가 고기를 좋아해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만찬이 끝날 무렵 윤 대통령이 아이스 라떼를 주문하자 “대통령님 감기 기운 있으신데 차가운 것 드셔도 괜찮으십니까”라고 물었고, 이에 대통령은 “뜨거운 것보다는 차가운 음료를 좋아한다”고 웃으며 답했다고 정 대변인은 전했다. 정 대변인은 “윤 대통령께서 ‘초선의원들과는 식사를 했는데, 다음에는 재선, 삼선 의원들과도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시종일관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은 만찬을 마치고 산책도 했다.


만찬의 형식과 주제부터가 여권의 난제들을 해결하기엔 적합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7명(대통령실 13명·국민의힘 14명)이 모인 단체 식사인데다 대화의 주제까지 미리 한정된 상태라 당정 간 입장차가 있는 이슈들에 대한 심도있는 의견교환이 이뤄지기는 어려운 자리였다는 것이다. 당정 간 소통과 화합을 위한 만찬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불편한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평가된다.

한 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재차 요청했다. 독대가 성사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으로도 읽힌다. 한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통화에서 “오늘은 현안들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성격의 자리가 아니었기 떄문에 한 대표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에게 대통령과 현안들을 논의할 자리를 잡아달라고 다시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 고위 관계자에게 독대 요청을 공개하겠다는 입장도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사 흘리기’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당에선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여권 내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기자에게 “정부와 여당이 처한 어려운 상황들을 해결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긴장 관계 해소”라며 “이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지지율 운명공동체가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한 대표도 대통령실도 보조를 맞춰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내야 한다”며 “그렇지만 서로 신뢰하기 어려운 상태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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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