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이 된 '내 가수'의 25주년... 보이스피싱 뺨치는 악랄한 '티켓 사기' 주의보

'환불 가능 금액' 언급하며 추가 입금 요구
개설, 해지 간편한 '자유적금 계좌' 활용해
피해자 계좌 다른 범행에 쓰는 대범함도
"빠른 수사로 주범 검거해 범죄 예방해야"

데뷔 25주년을 맞는 가수 'god' 멤버 손호영의 오랜 팬인 30대 A씨. A씨는 손호영 생일을 맞아 3월 23, 24일 열린 팬 미팅 콘서트에 가기로 했다. 첫날 티켓은 어렵게 구했지만, 이튿날 티켓 예매는 실패했다. 낙담하던 차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둘째 날 티켓을 양도한다'는 한 업체의 글을 보고 상담을 진행했다.

업체 측이 제시한 가격은 15만 원. 정가(12만1,000원)보다 약 3만 원 비쌌다. '웃돈'치곤 너무 싸 의심이 들었지만 업체 직원이 신분증까지 보여줘 안심하고 돈을 보냈다. 그러자 상대는 수수료 2,000원이 빠졌다며 15만2,000원을 입금하면 수수료를 뺀 15만 원은 돌려주겠다고 했다. 이후 '환불 가능한 최소 금액 기준을 채우면 기존 입금액을 돌려주겠다'는 요청이 수차례 반복됐다. 최소 금액 기준은 100만 원, 200만 원, 1,000만 원까지 올라갔다. 몇 시간 만에 A씨는 적금을 깨고 빚까지 끌어다 약 6,200만 원을 입금했지만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A씨는 "이미 입금한 돈을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며 "뒤늦게 사기인 걸 깨달았다"고 울먹였다.

조직범죄 의심... "피해 금액 38억"


대형 콘서트나 연주회마다 반복되는 '티켓 사기'가 단순히 티켓 값을 받고 잠적하는 수준에서 A씨 사례에서 보듯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처럼 악랄해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조직적 범죄'를 의심한다. 피해자들이 돈을 입금한 계좌주 B씨 이름과 그의 수법을 기반으로 수소문한 결과, B씨와 다수 인물이 여러 플랫폼에서 비슷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사기를 벌인 점을 확인했다. '계좌에 오류가 발생했다'며 보여주는 캡처 화면도, 환불 최소 금액을 채우라는 레퍼토리도 똑같았다. 현재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에 모인 피해자는 약 4,800명, 피해 금액은 38억 원에 이른다.

피해자 명의를 또 다른 범행에 사용하는 대범함도 보인다. 국내 아이돌 그룹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려던 C(22)씨는 업체로부터 "실수로 입금된 돈이 있으니 돌려달라"는 연락을 새벽에 받았다. 확인해보니 18만 원이 들어와 있어 바로 송금했다. 그러자 이튿날 경찰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해당 금액은 또 다른 피해자의 돈이었던 것이다. 계좌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런 수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휴대폰 번호와 신분증 등 개인정보를 넘겨준 또 다른 피해자 D(25)씨도 누군가로부터 사기 신고를 당해 중고거래 플랫폼 계정이 정지됐다.


피해자들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게시한 글에 따르면 올해 3월 5일부터 시작된 범행에 사용된 명의는 301명, 계좌 수는 1,826개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피해자 계좌도 섞여 있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일당들이 한 명당 여러 개 계좌를 만든 건 확실해 보인다. 비대면으로 손쉽게 개설 가능한 인터넷 은행의 자유적금계좌가 활용됐다. 범행마다 통장을 개설하고 범행 후 다시 없애는 '무한 계좌' 수법은 금융사기 방지 서비스 '더치트' 등에서 사기 이력 조회를 해도 제대로 확인이 안 된다.

피해는 커지는데 수사는 더뎌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반면 사이버범죄 특성상 피의자 특정이 쉽지 않아 경찰 수사는 더디다. △거래가 주로 SNS상에서 이뤄지는 데다 △대포 통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계좌 명의자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탓에 전국 경찰서가 애를 먹고 있다. 피해자들이 알음알음 피해 사실과 예방법 등을 공유하며 자구책을 펴는 실정이다.

7월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 관악경찰서는 일당 중 일부를 우선 범죄단체조직죄 등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피해자 측 대리인 김송이 디스커버리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소액 사기엔 적극 대처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다수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며 "빠른 수사로 범죄조직의 핵심 인물을 검거해야 비슷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