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서 또 전세사기... 모든 피해자가 '공인중개사'를 가리킨다

전세사기 수사의뢰 당한 41% 중개소 근무
위험 고지 안 하거나 아예 범죄에 가담까지
국토부 "중개사 확인·설명 의무 강화"해도
여전한 사각지대... "실효성 있는 대책 필수"

▲ 전세사기 조직도. 경기북부청 제공
지난해 피해금 700억 원대의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했던 경기 수원시. 이번엔 권선구 권선동의 한 도시생활형 주택에서 전세사기 피해 신고가 잇따른다. 3월부터 지난달까지 수원남부경찰서와 수원서부경찰서에 고소장이 접수됐는데, 현재까지 피해 규모만 약 70억 원에 달한다.


이번 사건의 특징은 피해자들이 '공인중개사'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인중개사들이 임대차 계약 전에 '전세사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안내를 반복했다는 게 피해자들의 얘기다. 보증금 1억3,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한 정모(27)씨는 "임대인이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 문제 될 게 없다고 중개사가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실제 피해자들이 제출한 고소장을 보면, 공인중개사들은 "나도 실거주 중인데 집주인이 믿을 만한 사람이다"거나 "건물 시세를 봤을 때 돈을 못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식으로 전세 계약을 유도했다고 한다.

전세사기에 공인중개사 적극 개입


피해자나 전문가들은 공인중개사의 도움이나 묵인 없이는 사실상 전세사기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한다. 공인중개사들은 △사기 위험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는 등 책임을 방기하거나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임대인과 결탁해 직접 범죄에 가담하기도 한다. 박영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중개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위험성을 알 수 있음에도 외면한 사건, 전세사기범과 결탁한 사건이 최근 늘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실제 공인중개사가 전세사기에 가담한 사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전세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돼 국토교통부가 수사 의뢰한 이들 중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이 41%에 달했다. 임대인(26%), 건축주(16%)보다도 높은 비율이다. 14일 경기북부경찰청은 420억 원 상당의 보증금을 가로챈 공인중개사와 부동산 컨설팅 업체 대표 등 일당 184명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180억 원가량의 보증금을 빼돌려 지난달 검찰에 넘겨진 '하남 빌라왕' 일당도 피해자를 유인하는 대가로 공인중개사에게 최대 1,800만 원을 지급했다.

설명 의무 강화만 하면 뭐하나


국토교통부는 공인중개사의 확인·설명 의무를 강화하는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개정안을 10일부터 시행하며 피해 예방에 나섰다. 개정안에는 공인중개사가 임차인에게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와 선순위 세입자 보증금 등 권리관계를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의 교육도 강화된다. 공인중개사는 내년부터 개업 전 64시간의 실무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민법 및 임대차법, 거래사고 사례와 예방 등 과목의 시간이 늘었다. 중개보조원 직업윤리 교육을 강화하고 직무교육 시간을 늘리는 방침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런 대책도 탁상공론에 그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한문도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만 설명하면 되니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며 "매매가가 낮아지면 전세보증금을 손해 볼 수 있다는 위험성을 정확히 알리는 항목은 없고 변죽만 두드린다"고 비판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차 책임이 있는 임대인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는 다루고 있지 않다"며 "정보 제공 책임과 의무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중간에 임대인이 바뀌는 경우, 확정일자를 받기 전 권리순위가 바뀌는 경우 등 설명 의무에 빠진 내용이 많다"며 "계약서에 특약 사항을 더해 전세사기 위험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도 중개사들을 대상으로 전세사기 예방 매뉴얼을 배포하고, 우수 중개사에 대해선 인증이나 혜택을 부여하는 등 유인책을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매일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