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 검사 "디올백으로 하늘 가릴 수 없다" 사직서

6일 오전 자신의 SNS에 글 올려... "며칠 전 법무부가 징계하겠다고 일방적 통보"

▲ 박은정 전 법무부 감찰담당관(현 광주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이 2022년 10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향하는 모습.
2020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앞장섰다가 현 정부 들어 거꾸로 징계받을 위기에 처한 박은정 광주지방검찰청 부장검사가 "디올백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비판하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박은정 부장검사는 6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직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며칠 전 법무부가 저를 징계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면서 "저는 고발사주로 실형을 선고받은 검사도 일찌감치 무혐의로 덮고 또 승진까지 시키는 이장폐천(以掌蔽天) 행위에 추호도 협조할 생각이 없다"라고 밝혔다. 이장폐천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이어 "따라서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며, 오늘 사직서를 제출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글에서 스스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관련 내용을 언급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박 부장검사의 사직서 제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6월에도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한동훈 장관 시절인 법무부는 입건중이라는 이유로 수리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징계 절차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사직 의사가 받아들여질지는 불투명하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인권보호관실은 지난해 9월부터 박은정 부장검사와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감찰에 돌입한 바 있다. 두 사람이 2020년 윤석열 검찰총장 감찰과 관련해, 법무부와 대검찰청으로부터 한동훈 당시 검사장(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관련 채널A 검언유착 사건 자료를 받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감찰한 법무부 감찰위원회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박 부장검사는 당시 법무부 감찰담당관이었다.


박 부장검사에 대한 법무부 징계위원회 회의는 오는 14일로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박은정 부장검사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사직합니다>

1973년 11월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워터게이트 사건과 무관하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people have got to know whether or not their President is a crook. Well, I'm not a crook.(국민은 대통령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알아야 합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 방해를 지시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자 하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전 윤석열 전 총장 징계 관련 항소심이 종결되었습니다. 2심은 면직이상의 중징계도 가능하다고 판시한 1심과 달리, 징계위원회를 소집하고 구성하는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며 윤 전 총장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지난 3년의 과정에서 피징계자는 대선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사건관계자는 법무부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이좋게 당해 사건의 원고와 피고가 되었고 피고측 법무부는 노골적으로 법치주의 형해화의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판결을 뒤집기 위해 1심 변호인을 해임하고, 증인 신청조차 하지 않고, 저의 휴대폰을 압수했으며, 수차례 소환과 자정 넘어까지 조사, 출국금지에 심지어 친정집 압수수색까지 당했습니다. 암으로 당시 투병 중이던 아버지 모습은 아직도 가슴아픈 일입니다.

이들의 각고(刻苦)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심에 이어 항소심 역시 제가 수행했던 감찰 업무는 모두 적법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법무부는 상고를 포기했습니다. 검사징계법에 따르면 법원이 절차상 흠결을 이유로 검사의 징계 취소 판결을 한 경우 검찰총장이 재징계를 청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셀프패소' '직무유기'라는 거센 비난에도 그저 무작정 상고를 포기했습니다. 이른바 '패소할 결심'이 결실을 본 셈입니다.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흑을 백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김학의 사건 등을 통해 모든 국민이 잘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최은순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김건희 명품백' 역시 피해자이며, 패소할 결심으로 수사 방해, 감찰 방해, 판사 사찰문건 배포 등을 덮는 행위들이 저는 "I'm not a crook"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법대로 했는데 저희한테 왜 이러십니까? 저희는 지금 압수수색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해병대원이 죽었는데 그걸 법적인 절차에 따라 수사한 건데 저희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군 인권센터가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박정훈 대령이 항명죄로 수사를 받을 때 해병대 수사관이 경북경찰청에 전화를 걸어서 이런 취지로 호소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겁이 안 나서 이렇게 했습니까? 아무도 진실을 이렇게 왜곡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무서울 줄은 몰랐습니다. 다음에 꼭, 사건이 꼭 거기로 가면 철저하게 수사를 좀 해주십시오."

해병대 수사관이 "채상병 부모 앞에 맹세를 했다"고 거듭 호소하자 경찰 팀장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이어 채 상병 사건 회수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관여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과 판박이라 저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전 법무부가 저를 징계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해왔습니다. 저는 고발사주로 실형을 선고받은 검사도 일찌감치 무혐의로 덮고 또 승진까지 시키는 이장폐천(以掌蔽天) 행위에 추호도 협조할 생각이 없습니다. 디올백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며, 오늘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국민이 선출하고 권력을 위임했다는 이유로 모든 부분에서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독재로 가는 길이다. 닉슨과 미국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적 지점을 지났다. 대통령은 사임하라"
1973년 11월 12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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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