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서 벌금 1500만…"무등록 식품제조·가공업 했다"
대법 "통·병조림 제외한 모든 식품이 영업신고 대상"
집에서 직접 만든 식초를 판매하는 것은 식품위생법상 '영업 등록'이 아닌 '영업 신고'가 필요한 즉석판매제조·가공업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식품위생법 위반, 사기,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A씨는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자기 집에서 7년간 직접 숙성·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식초를 만들어 왔다.
지난 2020년 4월에는 파킨슨병 환자와 가족들이 주로 가입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노모가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이나 자신의 집에서 요양하면서 병이 호전됐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피해자 B씨는 같은 해 5월 A씨에게 연락해 "장모가 파킨슨병으로 인한 변비, 복통이 심각한데 해결이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이에 A씨는 B씨를 집으로 불러 "병원 의사들과 식초를 연구하고 있는데 저널에 투고했다"며 "효능이 뛰어난 시가 300만 원 상당의 식초 원액 5병을 구매해 5주간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B씨가 A씨에게 식초를 사겠다고 하자, A씨는 식초 7병을 판매하고 B씨로부터 124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식초는 파킨슨병에 특효가 있지도 않았고, 의학 저널에도 실린 적이 없는 일반 식초였다. 또한 A씨는 소송 서류를 송달하려던 법원 집행관에게 폭언과 협박을 하기도 했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의) 장모는 알려 준 복용법에 따라 식초를 마셨지만 변비 치료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위염 증상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직무를 집행 중인 집행관에게 폭언하면서 협박을 해 공무집행을 방해한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다.
이에 항소한 A씨는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식초는 영업을 위하여 제조한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먹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식품위생법상 영업 등록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식품위생법령상 즉석판매제조·가공업에 해당해 영업 등록 대상이 아닌 영업 신고 대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2심은 "피고인의 행위는 무등록 식품제조·가공업을 한 것에 해당한다"며 항소를 기각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A씨가 식초를 제조·판매한 행위가 영업 등록이 요구되는 식품제조·가공업이 아닌, 영업 신고가 필요한 즉석판매제조·가공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 부분을 다시 심리·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식품위생법령은 통·병조림 식품 등을 제외한 모든 식품을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의 대상 식품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식품의 제조 기간의 장단에 따라 이를 달리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또한 "즉석판매제조·가공업자가 통·병조림 식품 등을 제외한 식품을 스스로 제조·가공해 판매하는 경우 (식초 등 일부 식품을 대상 식품에서 제외한) 단서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사기 등 다른 혐의 관련 원심판결 부분은 잘못이 없다"고 부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영업 등록이 요구되는 식품제조·가공업과 구별해 영업 신고가 요구되는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의 개념, 요건 및 그 대상 식품 등에 관해 최초로 설시해 이를 보다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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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