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천하’ 바그너그룹 무장 반란, 푸틴 체제 종말의 신호탄 쐈나

▲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시내에서 바그너그룹이 도시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러시아 용병 집단인 바그너(와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1년 반이 되어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장기화된 푸틴 독재 체제에 상당한 타격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됐다.

프리고진의 반란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24일(현지시각)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프리고진이 이번 반란을 통해 전쟁의 명분과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의 권위에 “구멍을 뚫었다”고 평했다. 이어 “짧은 내전이 전쟁에 지속적인 흔적을 남길 것이다. 러시아군 지도부 내부의 마찰은 이미 심각했지만 어느 때보다 더 나빠졌다”고 짚었다.


실제 프리고진은 23일 텔레그램으로 공개한 영상에서 푸틴 대통령이 이번 전쟁의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운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러시아를 공격하려고 한다’는 주장에 대해 “러시아 국방부가 사회와 대통령을 속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이라 부르는 이 전쟁이 “다른 이유들 때문에 시작됐다”며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원수가 되고 (러시아의) 두번째 영웅 훈장을 받기 위해 필요했다. 우크라이나를 비무장화하거나 비나치화하기 위해 전쟁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바흐무트 전투를 주도했던 프리고진이 러시아가 제시해온 전쟁 명분을 스스로 허문 셈이다. 생사를 건 전투에 나서야 하는 러시아군의 사기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부 외신은 한발 더 나아가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상처가 난 만큼 이번 사태가 1999년 말 시작된 23년 푸틴 체제의 종말의 서막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나아가 바그너그룹이 상당 기간 전선에서 이탈하는 게 불가피해지면서 이달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작전의 성패에도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밤 대국민 연설에서 “오늘 세계는 러시아의 보스(푸틴 대통령)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하루 만에 그들은 100만명 단위의 도시 여러개를 잃었고 모두에게 러시아 도시를 장악하고 무기고를 탈취하는 게 얼마나 쉬운지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 보좌관도 영국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결국 러시아는 갈라졌고, 지금 우리는 내전을 보고 있다”며 “푸틴이 사실상 권력을 잃은 것을 의미한다”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도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F-16 전투기의 조기 지원과 우크라이나 본토에서 크림반도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의 제공을 재차 요구했다.

미국 등 서방에선 표면적으론 이 사태가 ‘러시아 국내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전쟁에 끼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 정상은 24일 긴급 전화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 의지”를 확인했고,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도 전화회담을 통해 “러시아 정세를 포함해 국제사회가 직면한 긴급한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 주요 인사들은 키이우가 “전에 없던 진격 기회”를 갖게 됐다는 쪽으로 합의를 이뤘다고 전했다. 나토는 7월11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리는 정상회의를 통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관한 새 합의를 내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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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