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공장 중국에 통째로 복제 시도”…전 삼성 임원 구속 기소

中에 ‘삼성반도체 복제공장’ 시도
청두시·대만 회사가 자본 투자
해외 법인 세워 고액 연봉 미끼
삼성 등 핵심 인력 200여명 영입
“삼성 자료 적극 수집·활용” 지시
삼성 등 국내 반도체 업계 ‘당황’
“정년 후 고급인력 활용안 시급”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기술과 인력 유출 우려가 커졌는데 예방 조치들은 늘 부족했습니다.”(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서 근무하며 국내 반도체 제조 분야의 권위자로 꼽혀온 A(65)씨가 중국, 대만계 자본과 결탁, 해외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복제공장’을 세우려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는 당황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번 사건에 당혹스러움을 나타내면서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전직 임직원이 연루된 사건의 사안이 작지 않지만 대외적 인식 등을 고려해 대응을 자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출된 기술은 최적의 반도체 제조 공정을 구현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30여년간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뮬레이션, 연구개발(R&D)을 거친 것으로 전해졌다. 최소 3000억원에서 최대 수조원에 이르는 가치를 지닌 국가 핵심기술이라는 게 사건을 수사한 검찰의 판단이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선 기술과 인력 유출을 방지할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뿐 아니라 첨단산업이 해외로 나갈 경우 기술·인력 유출 우려가 커진다”면서 “보안을 강화하는 등 조치를 하지만 부족하다”고 말했다. 중소 반도체업체 관계자도 “기술·인력 유출 범죄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꽤 오래전부터 해왔다”며 “연봉 인상이나 복지 혜택을 강화해 우수 인력을 붙잡는 게 유일한 대책”이라고 했다.

국내 반도체업계가 인력 부족 현상을 겪는 상황에서 수십년간 첨단기술을 다룬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례가 이어지자 정년 이후 업계의 고급 인력을 활용하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구속기소된 A씨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각각 18년, 10년간 임원으로 일하며 잔뼈가 굵은 반도체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검찰에 따르면 그의 계획은 치밀했고, 실제 성사 단계까지 간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중국 청두시로부터 4600억원의 자본 투자를, 대만의 한 회사로부터 8조원 규모의 투자 약정 등을 받았다. 중국에 2곳의 반도체 제조회사를 설립한 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핵심인력 200여명을 고액 연봉을 미끼로 영입했다.


이후 직원을 통해 삼성전자의 중국 협력업체인 B사로부터 반도체 공장 설계 도면 등을 입수한 뒤 복제공장 건설에 나섰다. 중국 설계회사에는 감리회사인 B사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A씨가 직원들에게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 자료 등을 입수해 활용하라고 지시했고, 직원들은 이 지시를 따랐다고 했다. 반도체 공장 BED 자료의 경우 삼성전자 전 직원 C씨가 근무 중 얻은 자료를 퇴사 이후 반납하지 않고 갖고 있다가 A씨 회사의 팀장으로 영입된 뒤 부정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C씨의 경우, 공소시효가 지나 영업비밀국외누설 등 혐의만 적용돼 기소됐다.


검찰은 2019년 8월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를 통해 첩보를 입수했으나 A씨 등이 중국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수사가 중단된 상태였다. 그러다 올해 2월 A씨가 입국하면서 관련자 조사와 휴대전화 압수 등 본격 수사에 들어가 지난달 그를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A씨는 관련 범죄를 모두 부인하지만 나머지 피의자 6명 중 과반수가 다양한 혐의들을 자백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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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