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國 “미안하게 됐다”....중국, 뒤에서 한국 엑스포 유치 방해

경제 의존도 높은 국가들 압박
일부 개도국들, 한국 지지 철회

▲ 최근 중국의 한국 견제 움직임
최근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한 중남미 국가 측으로부터 “미안하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나라의 고위 관계자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 부산 등을 둘러보고 2030 국제 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와 관련해 긍정적인 뜻을 밝히고 돌아갔는데, 갑자기 “지지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 나라는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지지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 ‘경제 의존도가 큰 제3국의 설득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취지로 한국 정부 당국자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제3국’을 중국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바람에 최근 이 나라를 방문해 부산 유치 찬성을 굳히려던 한국 기업 관계자도 난처한 상황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가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을 상대로 총력 득표전에 나선 상황에서 중국의 견제 조짐이 일고 있다. 한국 지지 입장을 밝혔던 일부 개발도상국들이 중국의 압박성 설득으로 지지 철회를 고심하거나 사우디 지지로 선회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다른 BIE 회원국 고위 관계자도 최근 ‘중국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한국 지지를 고수할지 고심 중이라는 뜻을 전해왔다”고 전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말 미국 방문 이후 중국의 한국 견제 움직임이 점점 강해진다고 보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미국의 국빈 초청을 받아 방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며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올 들어 일본과 정상 간 ‘셔틀 외교(상호 방문)’를 복원하며 한·미·일 협력 강화에 나서자 중국이 친중(親中) 성향 국가 정부를 압박해 한국 엑스포 유치를 견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 한·미·일 협력 강화에 잇따라 ‘한국 때리기’


중국의 한국 견제 움직임은 한중 양자 외교와 한·중·일 외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정부는 5월 들어 예정됐던 주중 한국대사관의 면담 일정을 비롯해 한·중·일 외교부 부국장급 회의(5월 10일), 한중 경제인 행사(5월 9~11일)를 잇따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달 28일 제안한 국방 정책 실무 회의에도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지난 2일 인천에서 개최된 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도 중국 재정부장과 인민은행 총재가 돌연 불참하고 재정부 부부장이 대신 참석했다. 외교 소식통은 “카운터파트 간 격(格)이 중요한 외교 무대에서 보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행태”라고 했다.

민간 교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중 양국은 지난 2월 코로나 팬데믹 방역 조치의 하나로 중단됐던 상호 단기 비자 발급 중단 조치를 모두 해제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1월에 이어 3월에 발표한 60여 개 단체 여행 허용국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1·2차 단체 여행 허용국에는 미국과 일본도 빠졌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여전히 단체 여행 허용국에서 한국을 포함할지 계속 저울질하는 상태”라고 했다. 중국은 한중 여객선 운송 정상화를 위해 선박 안전 검사를 마친 상태임에도 운송 재개를 보류하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이런 조치들의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에선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강화에 대한 견제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윤 대통령이 방미 즈음에 외신 인터뷰 등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무력(힘)에 의한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불용치훼(不容置喙·참견을 허용하지 않겠다)”라고 했다가, 한국 외교부가 항의하자 외교부장이 나서 “완화필자분(玩火必自焚·불을 갖고 놀면 필히 스스로를 태운다)”고 경고했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견지하는 원칙이다. 그뿐 아니라 전임 문재인 정부도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한국을 겨냥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물론 2021년 한미 정상회담 때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았던 환구시보, 신화통신, 중앙(CC)TV 등 중국 관영 매체들도 윤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에서 나아가 위협적 언사를 하고 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무례하고 위협적 언행을 앞세운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로 한국 내 국론 분열을 유도하고, 한국의 국제 외교 활동을 보이지 않게 방해함으로써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에 균열을 내려는 것”이라고 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때처럼 직접적 보복으로 비치는 건 피하면서도, 한·미·일 3자 협력 구도에 균열을 내기 위해 한국 때리기에 나선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이 재작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 때도 미국 견제 차원에서 한국이 내세운 후보를 반대하며 경쟁자인 나이지리아 후보를 지지한 적이 있다”면서 “과거 정부 때는 무반응으로 일관했던 사안에 대해 한국 대통령과 정부를 트집 잡고 뒤에서는 엑스포 유치 방해를 의심케 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외교가 일각에선 중국이 2035년 엑스포 유치를 염두에 두고 2030 엑스포는 비(非)동북아 국가인 사우디를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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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