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30조 투자했는데 어쩌나…삼성전자 '날벼락'

보조금 받으려면 中 투자 멈춰라
'양자택일' 강요하는 미국 정부
중국 공장에 30조원 넘는 투자
삼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툭하면 삼성 호출해 프로젝트 맡겨
"미국에서 영업하는 대가로 생각"
야당은 '재벌 특혜'라며 반도체 지원 미뤄
"어느나라 국회의원인가" 비난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에 얼마나 시달리는지 아시나요? 상상 이상입니다."

삼성전자 미국 법인에서 근무했던 지인이 몇개월 전 한 말이다. 그는 "미국 정부는 절대, 공짜로 삼성전자에 혜택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필요한 정보를 수시로 삼성전자에 요구하고 보고서 형태로 제출할 것을 압박한다고 한다. 상당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사회공헌사업을 삼성전자에 떠맡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분통이 터지지만 어쩔 수 없이 미국 정부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삼성전자의 현실이다. 그는 "슈퍼파워 미국에서 외국 기업이 돈을 버는 대가"라고 했다.


 "보조금 받으려면 중국에 투자하지 말라"는 미국 정부

지인의 말이 떠오른 건 미국의 반도체지원법(미국에 투자한 반도체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법안)에 포함될 '가드레일' 조항 때문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미국에서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중국'의 반도체 공장에 추가로 투자하면 안 된다.

삼성전자가 한국 기업 중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최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투자액은 170억달러(약 22조원)다. 추가 투자도 예상된다. 중국 시안에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낸드플래시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가드레일 조항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는 △미국 테일러시에 파운드리공장을 짓는 대가로 받게 될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포기하든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중국 시안 공장의 추가 투자를 멈추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업계에선 무엇을 선택하든 조(兆)단위 손실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30조원 넘게 투자했는데...'기로'에 선 중국 시안공장

미국에서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연방 정부와 지방 정부를 합쳐 최소 3조원, 최대 5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100조원 넘는 현금·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삼성전자 입장에선 엄청난 돈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사업 실적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자금이란 얘기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이 15~20조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올해 필요한 50조원에 달하는 시설투자액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삼성전자는 최근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할 정도로 현금 동원 능력이 '빠듯한' 상황이다.


미국의 보조금이 갖는 의미가 단순한 '돈'에 그치지 않는 것도 부담이다. 보조금을 안 받는다는 건 삼성전자가 중국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즉 미국이 주력하고 있는 중국 반도체 규제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보조금을 냉큼 받는 것도 부담이다. 받으면 중국 투자를 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된다. 시안공장 생산량이 삼성전자의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생산물량은 중국 기업들에 공급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0년 5월 직접 방문해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말했을 정도로 반도체 사업의 전략적인 거점이다.

삼성전자는 시안 공장에 미국 공장 못지않은 돈을 쏟아부었다. 투자액은 시안 1기 공장에 108억달러(약 14조원), 2기 공장에 150억달러(약 19조5000억원)다. 추가 투자를 못 하게 된다고 해도 당장 공장이 무용지물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첨단 장비를 투입하지 못하게 되고, 반도체 장비업체 인력들이 철수하게 되면 '메이드 인 시안' 낸드플래시의 경쟁력은 매년 낮아질 수밖에 없다. 2013년 이후 30조원 넘게 투입한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이 '고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양자택일' 강요 받는 삼성...'1년 유예'라도 받아내야

삼성전자가 무엇을 선택하든 조(兆)단위 손실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고위 관리들이 카메라 앞에선 "땡큐 삼성"을 외치지만 뒤에선 급소를 잡고 있다.

반도체지원법에서 가드레일 조항을 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실적인 방안은 가드레일 관련 조항에 삼성전자에 유리한 내용을 최대한 넣고, 적용받는 시기를 늦추는 것뿐이다. 업계에선 '1년 유예' 등의 조치를 얻어내는 것이 거론된다. 이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무부처 관료들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한국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해외 정부 담당 임직원들은 연초부터 워싱턴에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계에선 삼성전자가 미국에 치이고 중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국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못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대 야당 민주당에 막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 '한국판 반도체지원법'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대통령까지 나서 국내 기업에 대한 추가 지원을 강조했지만 민주당은 '재벌 특혜' 프레임을 씌워 반도체지원법 통과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한 반도체 전문 대학교수는 "요즘 야당 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어느나라 국회의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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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