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양선순)가 이달 2일 구속 기소한 무면허 의료인 A씨(60)가 27년 동안 정형외과 전문의 행세를 하면서 근무한 병원은 서울과 경기권 등 전국 60곳이 넘는다.
A씨는 1993년 의대를 졸업한 뒤 국가고시에 불합격해 의사 면허를 취득하지 못하자 1995년부터 가짜 면허증과 위촉장을 만들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의사 노릇을 했다.
A씨가 근무한 병원의 홈페이지에는 A씨가 의학 석사를 마치고 외래 교수를 지내면서 해군병원에서 연수를 하거나 소방서장으로부터 위촉장을 받았다고 소개됐지만 모두 거짓 약력으로 드러났다. 주 전공으로 소개된 관절질환과 인공관절 치환술도 허위다.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하려면 의료전산망에 이름과 의사면허를 남겨야 한다. A씨가 의사 면허 없이 의사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병원에서 A씨를 미등록으로 단기 고용했기 때문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A씨는 그동안 근무한 병원에서 여러 핑계를 대고 병원장 등 다른 의사들의 명의의 전자의무기록 코드를 빌려 전산망에 접속하는 방법으로 진료하면서 수개월마다 한번씩 병원을 옮겨다녔다.
일부 병원은 A씨가 핑계를 대며 서류 제출을 미루자 의심하기도 했지만 정형외과 의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의료계 현실에서 A씨가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를 요구하자 문제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병원을 옮길 때마다 의사 면허를 보건복지부가 발급, 관리하기 때문에 일선 병원에서 면허 여부를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인의 경우 변호사협회 홈페이지에서 변호사 이름을 검색하거나 신분증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의사의 경우 이런 방법도 마땅찮다.
병원들은 A씨가 의대 졸업생이라는 것은 사실인 만큼 A씨가 위조한 의사 면허증도 대체로 의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 면허증 자체는 종이 형태라 비교적 위조하기가 쉽다.
결국 의사 관리 시스템의 허점과 진료부문별로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론에서 비용을 아끼려는 일선 병원의 이해관계가 A씨의 사기 행각을 30년 가까이 이어지게 한 셈이다. A씨는 무면허로 외과적 수술행위까지 하다 음주 의료사고를 내고 합의한 적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A씨의 가짜 의사 행세는 A씨의 의료 행태에 의심을 품은 한 병원 관계자가 경찰에 수사 의뢰하면서 밝혀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의료면허가 취소된 것"이라고 발뺌했지만 검찰의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등 보완 수사로 무면허 사실이 들통났다. 그동안 A씨의 부모와 아내, 자식들도 A씨를 진짜 의사로 믿고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남은 최근 8년(2014년 10월∼2022년 12월) 동안의 의사면허증 위조 및 행사, 무면허 정형외과 의료 행위에 대해 A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이 기간 A씨 계좌에서 확인한 급여만 5억여원이다. 검찰은 A씨를 미등록 의사로 고용한 종합병원 의료재단 1곳과 개인병원 병원장 8명도 보건범죄단속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병원이 단기 또는 대진 의사를 고용하고도 등록하지 않거나 신고하지 않으면서 실제로 환자를 진료한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 명의나 면허 코드로 진료를 하고 처방전이 발급되는 등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례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병원들의 의사 미등록 고용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에도 의사 면허 검색 시스템 등에 대한 제도 개선을 건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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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