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팔면 30조" 오세훈표 장기전세주택..'사기 주의보' 뜬 이유

▲ 오세훈 서울시장이 1일(현지시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공공주택으로 알려진 싱가포르 공공주택 '피나클 앳 덕스톤' 50층 전망대에서 김헌동 SH 사장과 함께 싱가포르 도심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뉴스1(서울시 제공)
이른바 '오세훈 아파트'로 불리는 서울 시내 3만3000여 채의 장기전세주택이 오는 2027년부터 순차적으로 의무임대기한 20년을 맞게 된다. 오 시장은 지난 8월 초 싱가포르 고급 임대주택 현장 방문에서 "(장기전세주택) 매각 시 30조원이 넘는 재원이 마련된다. 이를 임대주택 고급화를 위해 쓸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매각설'에 힘을 실었다.

오 시장의 임대주택 고급화 전략은 준공 30년이 경과한 노후 공공임대 아파트 재건축 프로젝트와 연결된다. 최근 서울시가 반지하주택 등 재난 취약가구를 10~20년에 걸쳐 공공임대 재건축 단지로 이주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힌 만큼 장기전세주택 매각 여부가 정책 추진의 핵심 동력이 될 전망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집을 비워야하는 기존 거주자의 반발과 투자 사기피해 우려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서울시·SH, 장기전세 3만3000호 보유...매각 시 보증금 돌려줘도 30조원 이상 재원 확보

12일 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시내에 3만3332채의 장기전세주택을 공급했다. SH공사가 공공택지에 직접 시행한 건설형 및 기존주택 매입형이 2만9555채, 나머지 3777채는 시가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에서 기부채납으로 확보한 물량이다.


SH공사가 보유 중인 장기전세주택의 자산 가치는 32조1067억원(올해 7월 말 시세 기준)에 달한다. 시가 기부채납으로 확보한 장기전세주택은 고가 강남권 단지도 있어 총자산 가치는 이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전세주택 입주자들이 낸 보증금은 SH공사의 부채로 잡힌다. 임대기간 만료 후 거주자에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7월 말 기준 장기전세주택 입주세대 임대보증금은 총 7조2820억원이다. 총자산 규모를 고려하면 기존 입주자 보증금을 돌려주고 시세의 80% 수준에 처분해도 오 시장 말대로 30조원 규모의 재원 확보가 산술적으로 가능하다.

장기전세주택은 2007년 8월 송파 장지지구, 강서 발산지구 등에 최초 공급됐다. 첫 해 2016가구를 시작으로 오 시장이 재임한 2011년까지 연평균 3500호 이상 공급됐다. 하지만 박원순 전 시장은 부임 후 장기전세주택을 '로또 전세'라고 비판하며 점차 공급량을 줄였다.

시는 2017년 1월 조례를 바꿔 '정비사업 기부채납으로 확보하는 임대주택은 모두 장기전세주택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폐지했다. 전용 60㎡ 이하 소형 행복주택도 기부채납이 가능토록 제도를 변경한 것이다. 이로 인해 장기전세 공급량은 더욱 줄어들었다. 2018년에는 연간 공급량이 31호에 그쳤다.


강남권 단지 2029년부터 의무임대기간 도래...반포자이, 래미안퍼스티지 2개 단지만 1.6조 매각대금

장기전세주택 세입자는 '최장 20년' 거주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최초 입주자'가 지속 거주할 때만 가능하다. 최초 입주자가 10년 거주한 경우 두 번째 입주자는 최장 거주기한이 10년으로 제한될 수 있다. SH공사는 2018년 이후 장기전세 입주자 공고문부터 이 조건을 명확히 고지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장기전세주택의 의무임대기한은 20년으로 규정돼 이후 시가 매각해도 불법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공공임대주택 임대의무기간은 이 기준이 도래하면 이후 자체 매각 등 처분이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투자 업계에선 2009년 입주한 서초구 반포자이(419가구), 래미안퍼스티지(266가구) 강남권 장기전세주택 매물에 관심을 보인다. 시가 매각을 결정해도 7년 뒤인 2029년에 매물로 나오지만 워낙 입지가 좋은 데다 시세보다 낮게 처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대 아파트 시세는 전용 59㎡가 27억원, 전용 84㎡가 38억원 선이다. 시세 80% 수준으로 처분하면 2개 단지에서만 약 1조6000억원대 매각 대금이 나온다. 최근 금리인상 여파로 서울 아파트값이 하락세로 전환됐지만 강남 핵심 입지에 위치한 단지여서 가격이 지금보다 급락할 가능성은 낮다.


기존 입주자 우선 분양권 없어...공매 진행하면 현금부자 유리

시가 재원 확보를 위해 장기전세주택의 단계적 매각을 결정하면 사실상 '20년 분양전환'과 비슷한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한 5·10년 분양전환 주택과 달리 장기전세주택은 현 거주자에 우선 분양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매각 시 보증금을 돌려받고 퇴거해야 하는 입주민과 갈등이 우려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기존 입주자에 재임대를 허용하면 종전 20년 임대 기한을 채우지 못한 임차인들이 반발할 수 있다.
일각에선 투명한 매각 절차를 위해 시가 장기전세주택을 '공매' 방식으로 처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럴 경우 고가 강남권 주택은 대출 의존도가 낮은 현금부자들이 대부분 차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근 일부 부동산 투자 업체에선 이런 정책 방향을 예측해서 강남권 장기전세주택 투자금을 모집하는 사례도 있었다. 사기 피해가 우려될 정도로 과열 반응이 나타나자 SH공사는 올해 3월 홈페이지에 "장기전세주택은 현재 분양전환이나 매각 계획이 없다"는 공지문을 올린 바 있다. 다만 공사에 구체적인 피해 사례는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 내부에선 장기전세주택 매각 공론화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장기전세주택 매각은 엄청나게 파급 효과가 큰 문제여서 아직 거론할 단계가 아니"라며 "시장님 발언 취지를 곡해하고 이를 악용한 투자유도 사기도 우려되기 때문에 신중히 다뤄야할 사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 시장의 구상대로 5년 후부터 공공주택 공급 재원으로 적기에 활용하려면 지금부터 장기전세주택 처분 기준 등을 면밀히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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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