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추락] 수요·공급 예측 두고 정부 골머리...제도로 시장 잡을까

자급 곡물 쌀, 공급은 과잉인데 소비는 감소
역경매 방식 등 유통구조도 하락세에 영향
정부, 추가 매입 계속...장기적으로 대체 품목 발굴

▲ 7월 18일 경북 포항시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신포항농협 저장고에 쌀값 폭락으로 판매되지 못한 무게 1t짜리 건조 벼 포대들이 가득 차 있다. [사진=연합뉴스]
밥상물가가 연일 고공행진인 가운데 정작 밥인 쌀 가격은 연일 내림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부와 농가, 유통업체는 수요와 공급 예측 실패 대가로 폭락하는 쌀을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는 단기와 장기로 나누어 대책을 내놓았지만, 농가에서는 9월 수확철을 앞두고 벌써부터 추가 폭락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소비자 외면받는 쌀...공급 과잉에 유통 구조는 그대로


4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쌀 20㎏ 평균 도매가격은 4만6940원으로 1년 전(5만9220원)보다 20.7% 떨어졌다. 평년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쌀값(20㎏)은 지난해 10월 5만6000원대까지 올랐지만, 점차 떨어져 최근에는 평년보다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국내 쌀 소비량은 계속 줄고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쌀을 소비하는 국민이 줄면서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상황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쌀 연간 소비량은 2011년 71.2㎏에서 지난해 56.9㎏까지 줄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63년 이후 최저치다.

소비자들이 점차 쌀을 외면하기 시작하자 최근 10년 동안 쌀 재배면적도 줄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쌀 재배면적은 연평균 1.5%씩 감소했다. 문제는 국민 1인당 쌀 소비량 감소 폭이 이보다 더 큰 2.2%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공급에 비해 턱없이 쪼그라든 소비 때문에 쌀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2018년과 2019년은 수요와 생산이 거의 맞아떨어졌는데 2020년에 기상악화로 흉년이 오니 쌀값이 치솟았었다”며 “쌀값이 오르자 2021년에 재배 면적이 늘면서 공급 과잉이 일어났지만 코로나로 소비는 더 줄어들어서 쌀값이 급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있는 쌀 소비성향도 변하는 추세다. 전체 쌀 수요량 대비 식품가공용 쌀 수요는 2012년 7.7%에서 지난해 12.4%로 증가했다.

쌀 공급과잉 문제는 해마다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국은 사실상 쌀 자급 국가라 쌀값은 해외 인플레이션이나 환율 등 외부 요인 여파를 받지 않는다. 즉, 재배기술 향상, 그 해 기후 등으로 쌀 생산량이 늘어나면 그대로 가격 인하에 귀결되는 구조다.

쌀 유통과정은 농민으로부터 농협 등 민간 수매, 도매업체 가공, 유통업체를 거쳐 소비자에게 오게 된다. 이미 올해 5월 전국 농협 창고에 쌓인 쌀 재고량은 76만4000톤으로 전년도 대비 77.7% 급증했다. 유통 첫 단계부터 공급이 과잉 상태인 것이다.

현행 쌀 입찰 방식도 쌀값 폭락을 가속화했다. 현재 쌀은 역경매 방식인 ‘시장격리 최저가 낙찰제’가 적용되고 있다. 최저가격을 정하지 않고 정부의 예정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써낸 물량을 구입하다 보니 시장원리대로 가격이 하향했다는 풀이다.

농가에서는 유통구조를 바꿔서 농민이 직접 소비자와 거래할 수 있는 직거래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전라남도 등 일부 지역자치단체는 농가들을 위한 쌀 소비 촉진을 위한 홍보 활동으로 직거래장터를 열고 있다.

한 쌀 농가 관계자는 “농가보유 물량 우선 수매를 통해 농업인들의 기대치만 올려놓고 입찰 예정가격을 낮춰 쌀값이 더 떨어지도록 유도한 것”이라며 “쌀 생산 비용, 정선비·포대비·상차비 등 부담을 고려하면 농민들은 헐값에 쌀을 판매하는 꼴”이라고 토로했다.

반면 농식품부 관계자는 “더 비싼 가격으로 쌀을 매입하는 것은 예산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부담이니 국제 규정상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해 저렴한 가격부터 구입하는 것”이라며 “농가에서 관련 불만이 나오지만 상황에 따라 제도적 한계가 있는 부분”이라고 해명했다.

◇정부, 추가 매입으로 단기 효과 노려...대체 품목도 물색


정부는 사실상 쌀 공급과 수요 조절 실패를 인정하고 대책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쌀값 폭락 관련 질의에 “이번에 (쌀) 수요 변화를 제대로 잡지 못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고 밝혔다.

농식품부가 내놓은 대책 중 하나는 ‘분질미’ 재배다. 일반 쌀 재배는 줄이고 가루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쌀인 분질미 재배는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6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통해 2027년까지 일반 벼 재배면적 4만2000㏊(헥타르)를 분질미 재배지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간 밀가루 수요의 10%를 분질미로 대체해 밀의 수입 의존도도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당시 브리핑에서 "분질미가 사실은 앞으로 우리 쌀 가공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굉장히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일반 쌀가루보다 밀가루를 대체하는 데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공익형 직불제(직접지불제)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심 중이다. 정부는 현재 2조5000억원인 직접직불제 규모를 5조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기존 쌀 직불제를 개편한 '직접직불제'는 일정 요건을 갖춘 농업인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쌀 재배 농가의 소득만 보장해주는 기존 제도에서 쌀 이외의 작물을 재배하더라도 면적당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구조로 개선됐다.

국회입법조사처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농경지 감축과 함께 쌀 가공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쌀 한 포대(20㎏) 가격이 지난해1000원가량 떨어진 만큼 생산을 줄여 공급량을 관리하고, 소비 촉진 정책도 함께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를 통해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 등에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밀을 대체할 수 있는 고품질 쌀가루 생산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분질미를 활용해 쌀가루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는 있지만, 밀이 주를 이루는 제빵이나 제면, 제과 등에 적합한지는 별개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입법조사처는 "농가·재배단지와 식품업체의 계약재배 모델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생산부터 유통까지 일관되고 차별화된 관리를 위한 고민도 수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쌀 초과 생산량 매입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쌀 재고량을 직접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면 공급이 줄어들어 단기적으로 가격 방어 효과를 노릴 수 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2021년산 쌀 공급과잉 물량 27만톤을 두 차례에 걸쳐 매입했으나 공급량을 감당하지 못해 효과는 미미했다. 이에 농식품부는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말까지 추가로 10만톤 매입을 완료하고 장기적으로 벼 재배지를 밀, 콩 등 다른 작물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8월 이후 쌀값이 한 번 더 폭락할 여지도 남아있다. 8월 말부터 수확되는 신곡(햅쌀)이 시장에 추가로 풀리기 때문이다. 정 장관은 “이달 26일까지 최대한 빨리 (시장) 격리를 할 것”이라며 “월말에 재배면적 조사가 나오면 (올해) 신곡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할지 검토해서 상임위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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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