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삼성 꺾겠다며 승승장구하던 샤오미의 추락

“사로병피(師老兵疲·싸움이 오래 지속돼 병사의 사기가 떨어진 모습).”

‘대륙의 실수’(생각 외로 좋다는 반어적 표현)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중국 샤오미(小米)를 두고 최근 중국 경제 매체들이 인용하는 문구다. 삼성·애플에 이은 세계 3위 스마트폰 기업으로, 각종 사물인터넷(IoT) 소형 가전을 출시하며 ‘샤오미 생태계’를 꾸려왔지만 최근 각종 악재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코로나 봉쇄 장기화로 1분기 스마트폰 출하량이 급락했고, 샤오미가 투자한 기업들의 상장 역시 중국 당국에 의해 잇따라 중단됐다. 신흥 거대 시장인 인도에선 극심한 반중(反中) 분위기 속에 회사 자금 9000억원을 압수당하고 시장 1위 자리마저 삼성전자에 내줬다. 현지 IT 업계에선 “거대 중국 내수 시장을 등에 업고 급성장했던 샤오미가 이젠 오히려 중국에 발목을 잡힌 형국”이란 평가가 나온다.

◇중국에 발목 잡힌 샤오미

2010년 창업한 샤오미는 ‘IT·가전 시장의 무인양품(일본 잡화 브랜드)’을 표방한 기업이다. 스마트폰·TV부터 공기청정기, 스쿠터, 전기차, 카드 단말기에 이르기까지 수백 종의 제품을 쏟아내며 ‘샤오미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핵심 사업인 스마트폰은 2020년부터 세계 3위를 지키고 있고, 샤오미 전용 사물인터넷 플랫폼에 등록된 가전도 4억 7000만대에 달한다. 또 제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유망 제조사를 발굴해 투자한 다음 위탁 생산하는 방식도 주목을 받았다. 2~3년 전부터는 투자사가 상장하면 일부 지분을 매각해 투자금을 다시 조달하는 선순환 구조도 만들었다. 작년 말까지 샤오미가 투자한 회사는 390곳, 누적 투자금은 603억위안(약 11조원)에 달한다.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雷軍)은 “애플, 삼성을 꺾고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며 기세등등했다.


그런 샤오미에 칼을 댄 것은 다름 아닌 중국 규제 당국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일 “‘리틀 손정의(소프트뱅크그룹 회장)’ 레이쥔이 투자한 회사들이 최근 상장 추진 과정에서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스마트 매트리스 제조업체 8H, 조명 회사 이라이트, 결제 시스템 개발사 상미 등이 잇따라 상장 일정을 연기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빅테크 때리기’를 자제하고 있지만, 샤오미 관련 회사들의 몸값이 시장에서 과도하게 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증시 불안을 우려해 규제에 나선 것이다.

샤오미 성장의 발판이었던 중국 내수 시장이 코로나 봉쇄 조치로 무너진 것도 발목을 잡았다. 샤오미는 매출의 60% 이상이 스마트폰이고, 생산·판매가 대부분 중국에 집중돼 있다. 올 1분기 샤오미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2.1% 감소한 3850만대에 그쳤다. 1분기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 감소(-11%)는 물론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평균 감소율(-18%)보다 높다. 샤오미는 내수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최근 협력사들에 올해 글로벌 생산 목표치를 2억대에서 1억6000만~1억8000만대로 낮추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판 애플’ 전략도 차질

샤오미가 꿈꿔왔던 고급화 전략, 이른바 ‘중국판 애플’이 되겠단 목표도 실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80% 사용자의 80% 수요 충족’으로 대표됐던 가성비 전략을 뒤엎는 것이 자국에서조차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 50만원 이상의 중국 고급폰 시장에서 샤오미의 점유율은 5%로, 애플(60%)은 물론 중국 제조사인 화웨이(11%)·비보(9%)·오포(7%)보다 낮다. 샤오미가 지난해 내놓은 첫 폴더블폰 ‘미 믹스폴드’ 역시 판매 부진이 이어지면서 최근 공식 판매가를 1만999위안(약 207만원)에서 6999위안으로 대폭 낮췄다.

줄곧 1위를 지켜온 핵심 시장 인도에서도 샤오미는 곤경에 처했다. 2020년 중국·인도 간 국경 충돌 이후 반중 정서가 확산하는 가운데 지난 4월 인도 재무부 금융범죄수사국(ED)은 샤오미의 현지 자금 7억2500만달러(약 9000억원)를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압수했다. 같은 달 샤오미는 1년 8개월째 지켜왔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도 삼성에 내줬다. FT는 “인도 시장에서 중국 기업이란 정체성이 샤오미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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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