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자는 떠나라".. 쫓겨나는 러시아

국제사회, 우크라 민간인 집단 살해에 대대적 퇴출 나섰다
외교관 추방령.. 獨 40명, 佛 35명, 伊 30명 등 자국서 내쫓기로
국제기구 퇴출.. 美·英 "극악무도, 유엔인권이사국 지위 박탈"
젤렌스키 "부차보다 더한 학살있다".. 바이든 "푸틴 전범재판 세워야"

▲ 2022년 4월 4일 월요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독일 대사관 앞에서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학살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있다./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에 분노한 국제사회가 초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잇따라 러시아 외교관 추방에 나섰고, 미국과 영국은 국제기구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수도 키이우 인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집단 학살 현장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발트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는 4일(현지 시각)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항의로 자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전격 추방했다. 독일도 이날 베를린 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 40명을 ‘외교상 기피 인물(페르소나 논그라타)’로 지정해 내쫓기로 했고, 프랑스 외교부는 “프랑스 안보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엔 이탈리아가 “러시아 외교관 30명을 추방한다”고 했고 스페인은 25명을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덴마크는 15명, 스웨덴은 3명을 추방한다고 했다. 리투아니아 외교부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다른 회원국도 우리와 같은 조치를 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영은 러시아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쫓아내겠다고 밝혔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 벌어진 극악무도한 전쟁 범죄의 증거들을 봤을 때 러시아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 될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루마니아를 방문 중인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유엔 인권이사회에 러시아의 이사국 지위를 박탈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범”이라며 “전범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선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 등에서 드러난 러시아의 학살 행위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4일 “보로댠카 등 다른 도시에서도 러시아군의 만행이 계속 추가로 확인되고 있다”며 “희생자 수가 (부차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과 AFP통신 등 외신은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에서도 민간인 학살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런 상황에서는 러시아와 평화 협상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만행을 ‘전쟁범죄’와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규정하고 이를 입증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함께 합동 조사단을 구성, 러시아군의 학살 행위에 대한 현장 조사에 돌입했다.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 검찰을 지원하기 위한 조사팀을 파견했고, 유로폴(유럽형사경찰기구)과 유로저스트(유럽사법기구)도 지원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그는 또 “국제형사재판소(ICC)를 공동조사단에 참여시키기 위한 협의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번주 중 키이우를 방문하겠다”고 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도 “부차의 민간인 시신을 모두 발굴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알아내고, 증거 보존을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진상 조사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은 러시아의 행위를 ‘전쟁 범죄’라고 규정하고, 러시아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재차 ‘전범(戰犯)’으로 칭하며 “부차에서 벌어진 전쟁 범죄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푸틴 대통령)를 전범 재판에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미 국무부는 검사와 수사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 조사팀을 파견해 우크라이나의 전쟁 범죄 수사를 도울 예정이다. 미국은 또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ICC에 제소하는 방안도 유럽 동맹국과 협의 중이다. 미국과 EU는 이르면 6일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도 국제 사회의 비난에 동참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민간인에게 해를 끼친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엄격히 비판한다”며 “추가 제재의 경우 전체 상황을 지켜보며, 국제 사회와 확실히 연계해 일본이 할 일을 확실히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국제 사회의 비난에 “민간인 학살은 우크라이나가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 뉴욕타임스는 부차에서 지난 1일 촬영된 동영상과 지난달 9~11일 민간 위성업체가 촬영한 위성사진을 비교한 뒤 “러시아 점령 때 이미 민간인 시신 11구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5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에 화상으로 참석해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진상 조사와 더 강력한 대(對)러 제재를 요구했다.

러시아군은 수도 키이우 인근을 비롯해 체르니히우와 수미 등 우크라이나 북부 대부분 지역에서 병력을 철수한 것으로 관측됐다. 드미트로 지비스키 수미주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북부 수미 지역에서 대부분 철수했다”고 했고, 키이우 서쪽 지토미르주의 비탈리 부네치코 주지사도 “러시아 병력이 모두 떠났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그러나 퇴각 과정에서 개인 주택과 숲에 상당한 양의 지뢰를 남겼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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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