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초 3·4는 'AI'로 수업한다면서... 아직 교과서도 못 정했다

['AI 디지털 교과서' 졸속 논란 가열]
내년 초 3·4년, 중·고 1학년 도입 예정
교육부, 법적 지위 연구용역 딱 한 건
"폐해 있을지 모를 기술을 공교육에?"

"동료 선생님들 중엔 내년에 3·4학년 담임하기 어려울 거란 얘기하는 분도 있어요."


수도권 초등학교 2학년 담임 교사의 말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따라다니며 생활지도를 해야 하는 1학년,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투닥거리는 6학년 담임 기피현상은 들어봤지만, 갑자기 3·4학년이 힘들 거란 얘기가 왜 나오고 있는 것일까.

그건 바로 내년 1학기부터 초등 3·4학년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이용한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에 AI 수업을 해야 하는데, 교과서도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교사들이 도대체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정부가 AI 열풍을 등에 업고 공교육 현장에 AI 요소를 발빠르게 도입한다고 해놓고선, 관련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교육 현장에선 '졸속 수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중이다.

AI 수업, 준비는 거의 없다시피
AI 교과서는 당장 반 년 후 실전에 투입되지만, 이와 관련해 교육부가 사전에 수행한 연구용역은 단 한 건에 불과하다. 26일 국회 교육위원회 고민정 의원실에 따르면, AI 교과서와 관련해 교육부가 발주한 연구는 'AI 디지털교과서 발행 체제 및 법·제도 개선방안'뿐이다.

지난해 5~10월 진행된 이 연구의 목표는 'AI 교과서의 법적 개념을 명확히 정의해 법·제도 개선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가 전부다. 연구를 마친 지 나흘 만인 지난해 10월 17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교과용 도서 정의에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추가한 것이다.

그러나 AI 교과서가 '법적으로 정당한 자격을 갖춘 공교육 교재로 쓰일 수 있는지'에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따라붙는다. 국회입법조사처 김범주 조사관(교육학 박사)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소프트웨어 형태인 AI 교과서를 교과용 '도서'에 포함시킨다는 교육부 법령은 출판법이나 도서관법 등 다른 법에 비춰, 도서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학교 교육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라면서 "AI 교과서는 교과용 도서로서 지위를 갖춘 법적 교과서가 맞다"고 주장했다.


당장 내년에 학생들이 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 어떤 교과서를 쓸지도 모른다. AI 교과서는 내년 3월 초등 3·4학년과 중·고 1학년을 대상으로 영어·수학 등 과목에 도입된 뒤 2028년엔 거의 모든 과목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어떤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할지가 11월에 결정되고, 이 교과서들을 활용한 각 학교의 현장 적합성 검토는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이어진다. 3월부턴 바로 실수업이 시작된다.

일정이 이렇게 빡빡하니 교사들 반대가 많다. 서울교사노조가 'AI 교과서 교원역량 강화 연수'에 다녀온 교사 1,794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AI 교과서 전면 도입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응답자 94%가 반대했다. 경기의 한 중학교 과학교사 장모(38)씨는 "학교에 비치된 2018년식 학습 기기는 고장이 잦고, 교내 와이파이는 약해 연결도 원활하지 않다"면서 "기본 설비 구축도 덜 됐는데 정부가 밀어붙이기만 한다"고 비판했다.

학부모들은 아예 AI 교과서의 존재를 모르거나, 아는 학부모는 걱정을 한다. 고민정 의원실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한 학부모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AI 교과서에 동의하는 학부모는 10명 중 3명꼴이고, AI 교과서에 관해 들어본 적 없다거나 잘 모른다고 대답한 이들(57.4%)도 절반이 넘었다. 내년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박은영(53)씨는 "옛날 것만 고집해도 안 되지만 이런 걸 바꿀 땐 충분히 평가하고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졸속으로 도입되는 느낌이라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저작권자 ⓒ 매일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