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위약금 수천억원일 듯"...코너 몰린 민희진, '뉴진스 포기'냐 '자존심 포기'냐
27일 어도어 이사회 소집해 민희진 대표이사 해임 안건 의결
어도어 "민희진 사내이사로 남아 뉴진스 프로듀싱 가능"
민희진 "협의된 바 없는 일방적 통보" 반발
하이브 최고인사책임자가 어도어 대표로...사실상 방시혁 직할
진퇴양난 민희진, 어도어 잔류할까 뉴진스 포기할까
뉴진스와 함께 독립하려면 위약금만 수천억 물어야
뉴진스 소속사인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27일 전격 해임됐다. 하이브 자회사인 어도어는 이날 이사회를 소집해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갈등을 빚어온 민 대표를 어도어 대표이사에서 해임했다. 민 전 대표의 어도어 사내이사직은 유지되며, 뉴진스의 프로듀싱 업무는 계속 맡을 수 있다고 어도어 측은 밝혔다. 하이브가 민 전 대표의 경영권을 박탈하고 '콘텐츠 제작자'로서 역할을 축소한 것이다.
민 전 대표는 반발했다. 그는 “제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해임을 결의했다. 뉴진스 프로듀싱을 계속한다는 것도 저와 협의된 바 없는 일방적 통보”라고 말했다. 그는 “27일 이사회를 연다는 통보를 23일 기습적으로 받아 27일 유선으로 (이사회에) 참석했다”면서 “해임 결의는 주주 간 계약의 중대한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추후 대응에 대해 숙고 중”이라고 했다.
어도어의 후임 대표이사는 하이브 출신의 인사관리 전문가인 김주영 어도어 사내이사가 맡는다. '민희진의 회사'로 여겨진 어도어에 대해 하이브가 '접수'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방 의장 직할 체제가 들어서는 셈이다. 하이브는 입장문에서 “(콘텐츠) 제작과 경영을 분리하는 건 하이브 산하 모든 레이블(자회사)에 일관되게 적용해온 원칙이었으나 어도어만 예외적으로 (민희진 전) 대표이사가 제작과 경영을 총괄해왔다”며 “어도어 역시 제작과 경영을 분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주영 대표는 유한킴벌리 인사팀장과 크래프톤 HR 본부장 등을 거쳐 2022년 최고인사책임자로 하이브에 입사했다.
방 의장과 민 전 대표가 약 4개월간 극한 갈등을 빚어온 상황에서 민 전 대표 해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어도어 지분 80%를 보유한 하이브는 지난 5월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민 대표를 해임하려 했으나, 법원이 민 전 대표가 하이브를 상대로 낸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며 제동이 걸렸다. 당시 민 전 대표와 가까운 이사 2명을 해임하고 하이브가 보낸 인사 3명이 어도어 이사에 선임되면서 민 전 대표는 혼자 남아 방 의장의 사람들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하이브는 어도어 이사회를 소집해 언제든 민 전 대표를 해임할 수 있었지만, '때'를 기다렸다. 그사이 하이브와 민 전 대표의 주주 간 계약을 해지했고, 뉴진스가 도쿄돔 콘서트와 팬미팅 등 일본 활동을 마무리할 시간을 줬다. 뉴진스가 방탄소년단(BTS),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등과 함께 하이브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민 전 대표 해임이 뉴진스의 일본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게 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사이 하이브 측은 민 전 대표가 사내 성추행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 뉴진스 멤버들을 비방했다는 의혹 등을 제기하며 민 전 대표의 손발을 자를 명분을 쌓았다.
진퇴양난 민희진, 뉴진스 데리고 독립하려면 위약금만 수천 억 원 이를 듯
민 전 대표와 하이브의 갈등은 지난 4월 하이브가 "민 전 대표가 어도어 경영권을 탈취하려 한다"며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면서 시작했다. 민 전 대표는 반박 기자회견을 열어 하이브를 맹비난하며 여론을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돌렸지만, 어도어 지분을 앞세운 하이브의 '힘'을 꺾을 순 없었다.
하이브는 민 전 대표를 재정적으로도 압박했다. 하이브가 이달 19일 공시한 민 전 대표와의 주주 간 계약 해지에 따라 그가 어도어 지분 매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하이브와 민 전 대표의 주주 간 계약에는 임기보장과 풋옵션(주식매도청구권) 등이 포함돼 있었지만, 계약 해지와 함께 풋옵션이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민 전 대표가 보유한 어도어 주식의 풋옵션 행사 가격은 '어도어의 최근 2개연도 영업이익 평균치에 13배를 적용한 뒤 총 발행 주식 수로 나눈 금액'이다. 계약 해지 전 민 전 대표는 어도어 보유 지분 18% 가운데 풋백옵션이 적용된 13%를 올해 매각하면 약 1,000억 원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으나, 이를 상당 부분 잃게 됐다.
민 전 대표는 코너에 몰렸다.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민 전 대표에게 어도어 신임 대표의 지휘를 받으며 뉴진스 프로듀서만 담당하라는 것은 사실상 회사를 떠나라는 뜻”이라면서 “민 전 대표로선 해임에 불응해 하이브·어도어와 법적 싸움을 이어가거나 막대한 위약금을 물고 뉴진스를 데리고 나가 독립하는 방법밖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 전 대표가 뉴진스와 독립을 결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뉴진스가 어도어와 전속계약을 해지하려면 해지 시기를 기준으로 직전 2년간의 월평균 매출에 계약 잔여기간 개월 수를 곱한 만큼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 금액이 최소 3,0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민 전 대표에겐 '뉴진스를 포기하느냐', 아니면 '자존심을 꺾고 어도어에 남느냐'의 잔인한 선택지만 남은 셈이다.
뉴진스가 현재의 인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하이브의 프로듀싱 능력을 감안하면 뉴진스의 활동에는 당장은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스스로를 '뉴진스 엄마'라고 부른 민 전 대표가 만든 뉴진스의 콘셉트와 정체성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뉴진스가 민 전 대표와 함께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인기를 이어갈 수 있겠지만, 민 전 대표가 쌓아온 개성과 차별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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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