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이후 최대 위기"…하마스 직격탄 맞은 하버드

미 하원 청문회에 참석한 하버드·MIT·UPEN 총장,
반(反 )유대주의에 대한 답변 피한 뒤 사퇴 압박
펜실베니아대 총장 그만두자 하버드 MIT 총장도 사임 위기
학문적 자유 지지하며 반발 움직임도 확산
반 유대주의 논쟁, 대선까지 이어지나

▲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왼쪽)과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총장 등이 지난 5일(현지시간) 미 하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 엘리스 스테파닉 하원의원(뉴욕주)은 지난 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유펜) 총장이 사임한 직후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이렇게 썼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의회의 힘으로 유펜 수장에 이어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총장까지 날려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미국 동부의 명문대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기여입학제나 소수 인종 차별 같은 입시 논란 때문이 아니다. 아이비리그 총장들이 청문회장에 불려가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아이비리그 구성원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불똥이 상아탑으로 튀어 수장들의 거취까지 뒤흔드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와중에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영싸움과도 뒤섞이며 해당 대학들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미국 고등 엘리트 교육이 베트남전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비리그 총장들, 연쇄 사퇴 기로

이번 사태는 지난 5일 미국 하원 교육위 청문회에서 시작됐다. 당시 청문회엔 엘리자베스 매길 유펜 총장과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 샐리 콘블로스 MIT 총장 등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의원들은 "유대인을 학살하자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학칙을 위반한 것이냐"고 질문했다. 세 명의 총장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답했다. 반 유대주의에 대한 애매한 입장을 취하자 유대인을 중심으로 정치권과 대학 구성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경제계와 금융계에 몰려 있는 유대인들은 해당 학교의 기부를 중단하겠다고 압박했다. 미 하원은 이들 대학에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매길 유펜 총장이 먼저 지난 9일 백기를 들고 사임을 발표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버드대 최초의 흑인 여성 출신 총장인 클로딘 게이 교수가 다음 표적이 됐다.

취임 6개월도 되지 않은 게이 총장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발발직후 하버드대가 하마스나 테러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하버드대를 비롯해 미국 주요 대학에서 일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친(親)팔레스타인 성명 발표나 시위가 이어지던 때였다.

게이 총장은 청문회장에서도 코너에 몰렸다. 당시 버지니아 폭스 공화당 하원의원은 "내가 말하는 것은 인종에 기반한 급진좌파 이념에 찬성하는 데 내재한 중대한 위험"이라며 "제도적인 반유대주의와 혐오는 당신 기관의 문화가 가져온 독"이라고 쏴붙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의회 의원 70명 이상이 이들 세 총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여기에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하버드대 일부 동문들까지 가세했다. 하버드대 출신인 빌 애크먼은 하버드대 이사회에 보낸 서한에서 "게이 총장이 짧은 임기 동안 500년 역사상 그 누구보다 하버드대의 명성에 더 많은 손상을 입혔다"고 비판했다. 그는 "게이 총장을 비롯해 3명의 총장은 청문회에서 (유대인에 대해) 적대적인 증인처럼 행동했다"며 "능글맞은 웃음으로 의회에 대한 깊은 경멸을 드러내고 기본적인 답변을 노골적으로 거부했다"며 사임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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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