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이 바뀐 에콰도르 치안…갱단 수장이 교도소서 '평화선언'

경찰을 들러리 세우고 회견처럼 발표…동영상 찍어 외부 공개

▲ 차량 수색하는 에콰도르 군 장병 (키토[에콰도르] EPA=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군 장병이 무기·마약 단속을 위해 행인 차량 트렁크를 살피고 있다.
치안 불안이 극심한 남미 에콰도르에서 갱단 수장이 교도소 내부에서 기자회견 형식으로 갱단 간 폭력을 종식하고 평화를 선언하는 동영상을 찍어 공개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교정당국의 한심한 통제 수준을 한눈에 보여주는 이 영상에 대해 정부는 "갱단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엔 변화가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27일(현지시간) 엘우니베르소와 라오라 등 에콰도르 일간지에 따르면 전날 주요 소셜미디어에는 에콰도르 폭력조직 중 하나로 알려진 '로스초네로스'의 수장 아돌포 마시아스가 지역 갱단 간 평화 협정 체결 사실을 직접 공표하는 내용의 동영상이 게시됐다.

해당 영상에는 '피토'라는 별명을 가진 마시아스가 테이블 앞에 앉은 채 주요 갱단 이름을 나열하며 "우리는 에콰도르 국민을 위해 평화를 담보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느낀다"며 "치안 상황 개선을 위해 강탈과 폭력 등을 종식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의 뒤에 서 있던 5명 중 4명의 남성은 소지하고 있던 총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퍼포먼스'를 했다. 다른 1명은 경찰 제복을 입은 채 영상 내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 영상이 공개되자 현지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마시아스는 현재 교도소에 수감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 에콰도르 정부는 해당 영상이 교도소 내부에서 촬영된 게 맞는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후안 사파타 내무부 장관은 이날 에콰도르 방송국 '텔레아마소나스' 인터뷰에서 "범죄조직 두목의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이 경찰관인 것으로 확인했다"며 "현재 그 경찰관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무기와 통신기기 사용이 금지된 교도소 내부에서 버젓이 동영상을 촬영한 것도 모자라 경찰관이 갱단 수장의 평화 선언 현장에 '들러리'처럼 서 있었다는 뜻이다.


엘우니베르소는 2022년 미주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한 보고서에서 '피토'가 교도소에 대한 상당한 내부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사파타 장관은 "동영상 내용과 관계 없이 폭력 사태에 대한 정부 강경 대응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며 전국 교도소를 대상으로 내린 비상사태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지난 주말 과야킬에 있는 과야스 제1교도소(리토랄 교도소)에서는 서로 다른 갱단 간 폭력 사태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검찰은 전날 기준 3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종전 18명에서 늘어난 수치다.

이와 관련, 경찰은 교도소 내부 시설을 확인한 결과 11구의 시신과 29점의 신체 부위를 수습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정확한 사망자 수는 부검 등을 통해 정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지 매체는 '과야스 제1교도소에서 각각 다른 수감동을 장악한 범죄 조직인 로스티게로네스와 로스로보스 사이에 적대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세력 다툼이 벌어진 것'이라는 정보 문서가 있다고 전했다.

과야킬을 비롯한 에콰도르 해안 도시는 최근 유럽과 미국으로 향하는 마약 밀매 통로로 악용되면서, 마약 밀매 조직 등과 연관된 각종 강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다음 달 조기 대선·총선을 앞두고 지역자치단체장이 피살되거나 검찰청에 폭탄 테러를 시도하는 등 최근 들어 사회 혼란상이 더 여실히 노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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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