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의 퇴장… K팝, 신비주의 벗고 더 빠르고 투명하게

K팝 대부의 공식 퇴진

‘K팝 대부의 퇴장’. 지난 3일 음반기획사 SM의 공식 발표는 이렇게 압축된다. 이수만 SM 전 총괄프로듀서(PD)가 가졌던 앨범 기획 전권을 다수의 전문가와 제작 부서로 분산시키는 것이 핵심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날 SM은 이수만과의 프로듀싱 계약을 종료했고, ‘팬과 주주를 위한 글로벌 엔터사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이수만의 1인 리더십에 기대된 과거를 ‘SM 1.0·SM 2.0′으로 지칭하며 결별을 고한 것이다. ‘SM 3.0′ 시대가 시작됐다.

◇걸출한 K팝 선구자 vs 실패한 경영자

대중음악계는 SM의 변신이 “K팝 판도 변화의 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1995년 이수만의 영문 이름 앞글자를 따서 설립된 후 28년간, SM은 K팝의 기틀을 짜왔고, 선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수만과 SM이 남긴 굵직한 K팝 성과는 크게 ‘아이돌 육성과 캐스팅 시스템 정착’ ‘K팝의 첨단화’ ‘한류 풍폭(风暴·맹렬한 사회 현상을 뜻하는 중국어)’이 꼽힌다. 이수만은 이미 ‘SM 1호 가수’로 불리는 1990년대 댄스그룹 ‘현진영과 와와’ 때부터 작곡가 홍종화를 현진영에게 붙여 성악 발성, 물구나무 서며 노래 부르기 등을 훈련시켰다. 국내 최초로 길거리 캐스팅을 정식 도입해 보아, H.O.T. 강타 등을 발굴했다. 이후 수많은 엔터사가 SM의 길을 따라갔다. 평론가 김작가씨는 “현진영과 와와의 데뷔앨범은 현재 재발매가 어렵다. 당시에 실험적인 첨단 방식으로 녹음한 탓에 기계가 빨리 단종돼서다. 그만큼 이수만은 일찍부터 K팝 시장에 새로운 기법과 장르를 대거 도입해왔다”고 했다.


이수만은 2000년대 초부터 수차례 언론 인터뷰 등으로 ‘한류 3단계론’을 외치기도 했다. 한류 1단계는 K팝의 수출, 2단계는 현지 회사와 K팝 합작, 3단계는 현지인 그룹에 K팝을 전수하는 과정으로 전개될 거란 주장이었다. 임진모 평론가는 “2000년 H.O.T.의 베이징 공연을 현지 신문이 ‘한류 풍폭’이라 보도한 게 한류 가능성이 확인된 첫 순간”이라며 “세계 속 미약했던 한국 음악의 지름 크기를 이 정도까지 키워낸 건 이수만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이수만 없는 SM 3.0 시대가 등장한 건 “프로듀서로선 존경받지만, 경영자로선 실망스러운 면모가 컸기 때문”이란 평이 나온다. SM의 소액주주이자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지난해 9월부터 이수만의 SM 총괄PD 계약을 문제 삼았고, 올해 1월 관련 주주대표소송까지 예고했다. 이수만이 2000년부터 개인 회사 ‘라이크기획’으로 프로듀싱 수수료를 ‘SM 별도(자회사 제외) 매출액의 최대 6%’, 약 1600억원을 챙기면서 독단적으로 음반 기획을 한 게 SM 경쟁력 저하의 원인이었다는 비판이었다.

여기에 ‘71세 고령’ ‘달라진 K팝 시장의 체급’ 등이 그의 존재를 ‘K팝 대부’에서 ‘위험 요소’로 변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우진 평론가는 “아이돌 제작 1팀에만 30억~100억이 드는 시대”라며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글로벌 시스템을 갖추라는 지적을 무시할 순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3일 발표와 함께 SM 주가가 전날 종가 대비 2.13% 오른 것도 시장이 이수만의 부재를 ‘위험 요소 해제’로 받아들였단 분석이다.

다만 이수만이 ‘SM의 얼굴’로서 해온 활동을 단번에 접긴 어려울 거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그가 적극 나서 체결한 SM과 몽골·사우디아라비아 등과의 업무협약(MOU)이 대표적 예다. 현재 이수만은 향후 행보에 대해 침묵 중이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창업주로서 협력은 계속 이어갈 수 있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신비주의 벗고 신인 데뷔 빨라지는 SM

SM은 향후 5개 제작센터 산하에 소속 뮤지션을 분배하고, 독립 권한으로 앨범 기획과 뮤지션 관리 등을 전담시키게 된다. 가상인간 솔로 데뷔(걸그룹 에스파의 세계관 속 등장인물인 ‘나이비스’)도 추진하는데, 이 역시 전담 IP 제작센터를 따로 두기로 했다. 그간 거의 시도하지 않던 사외 레이블(음반기획사) 영입도 발라드·힙합·OST 등 기존 SM에 없던 장르 중심으로 적극 인수하고, 소속 뮤지션의 성장 단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사·내외 레이블로 독립시키는 가능성을 터놓았다.

전문가들은 특히 5개 제작센터로의 곡 분배를 전문가 집단인 ‘A&R 커미티(협의체 본부)’가 중재하기로 한 데 주목한다. 과거 이수만에게 곡 최종 선정권을 쥐여줬던 ‘총괄PD’ 직함도 삭제됐다. 협의체의 장은 이수만의 처조카 이성수 SM 공동대표가 맡지만 역시 그 안에서의 중재 역할에만 그친다. 임진모 평론가는 “2000년대 K팝 업계 1위를 달리던 SM이 하이브에 이어 JYP에까지 밀리며 어느덧 (시총) 4등이 됐다. 대중을 움직이는 게 ‘곡’과 ‘젊은 시대 감각’이란 걸 절감한 선택지일 것”이라고 평했다.

SM은 또한 신인 데뷔 역시 기존 ‘1년에 3.5팀’에서 ‘1년에 2팀 이상’으로 빠르게 추진하고, 앨범 판매량도 1800만장까지 늘릴 계획이다. 전년 대비 30% 증가 목표다. 기존 신비주의처럼 비공개했던 데뷔 시점도 주기적으로 공유한다. 우선 연내 이성수, 탁영준 공동대표가 각각 전담한 새 걸그룹과 보이그룹, NCT도쿄 등 신인 3팀을 선보이고, 가상인간(나이비스) 솔로앨범을 선보인다. 평론가 김작가씨는 “새 조직 내 ‘이수만 사단’으로 불렸던 작곡가 유영진 등의 위치와 신인 흥행팀의 수장들의 성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누가 뜨는 곡을 빨리 만들어 내느냐가 포스트 이수만의 후계 구도를 결정지을 수도 있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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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