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격변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면 '장기판의 말' 신세를 면할 수 없다. 대외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한국에 소중하지 않은 해외 시장은 없다. 미국-서방도, 중국-러시아도, 모두 중요하다. 그들 양측은 서로를 겨냥하면서도 실리를 챙기는데 여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한국도 실리를 위한 곡예는 불가피하다.
미 백악관은, 중국의 부상을 돕는 날개들을 모두 정리하는 게 전략적 과제다. 동아시아 전략도, 우크라이나 전략도 대전제는 중국 압박이다. 우리 한국은 그동안, 세계에서 중국시장을 가장 잘 활용해온 나라다(대만 제외). 지난 30년 무역 흑자가 7099억 달러에 달한다. 언제나 한중 협력에 경고를 날리던 미국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 등을 미국으로 옮겨가기를 원한다(우리의 전체 반도체 수출 중에서 중국 수출이 60%를 넘는다). 요컨대, 지금 우리는 피 튀기는 실리 전략을 수행해야 하는 지점에 서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50여일이 지나자, 미 CIA 국장 윌리엄 번스는 미국의 전략 목표를 이렇게 공개했다. '중국은 이번 세기의 유일한 주요 지정학적 도전자다.’ 미국의 21세기 최대 전략 목표가 중국임을 분명히 하고, 우크라이나 전략도 중러 협력을 차단하려는 중국 압박 전략의 일환임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 중러 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첫째,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을 성공적으로 촉발했다고 본다. 미국과 서방이 냉전종식 선언을 무시하고, NATO의 동진정책을 확장시키며 의도적으로 전쟁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이 분쟁으로 러시아 국력을 소진시키고 중러 협력을 무력화하여, 향후 더욱 거세질 미중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한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둘째, 미국이 취할 다음 전략에 주의하고 있다. 지금은 대만 문제가 튀어 올라와 있지만, 미중 경제협력을 감안할 때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다. 그보다 중국은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문제를 심각하게 본다. 다음 전략이 ‘인종적 공격’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유의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중국인권연구회는 보고서 '반아시아 인종차별 급증, 미국 인종차별 사회의 본질'을 발표했다(2022.4.15.). 이 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핵심 쟁점인 동부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에 대한 인종 공격을 주목한다. 그리고 앵글로 색슨 백인들의 편견을 주목한다.
미국에서 중국인 박해와 관련된 역사적 사례는, 1840년대에 발생했다. 최초로 미국으로 이민 간 중국인 철도노동자들이 박해를 당한 사건이다. 그들은 차별 대우 속에서도 근면과 검소로 대단한 호평을 받았으나, 경쟁을 의식한 백인들로부터 거친 공격과 학대를 받았다. 이윽고 미 정부는 중국인 이민을 금지하는 인종차별적인 ‘중국인 배척법’을 제정했다. 이민 국가인 미국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은 130년이 지난 2012년 미 의회가 공식으로 사과했다.
중국에 대한 서방의 기본적 인식과 태도에는 중국 경시의 흐름이 깔려 있다. ‘중국은 손쉽고 방대한 시장이며, 서방의 말 잘 듣는 하청공장’이라는 환상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 보고서는, 이런 역사적 경험과 더불어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잇단 아시아인 공격 사건과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학대 사건 등을 연계하여 관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이 중러 양국의 결속을 더욱 강하게 함은 물론이다.
미-중-러 3국은,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 기존 제국주의 세력들을 누르고 떠오른 나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들 3국의 관계 변화는 세계질서 전반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친다. 갈수록 선명해지는 흐름은 ‘미중 경쟁과 중러 협력’이다. 유일하고 영원한 세계 제국을 꿈꾸는 미국에 중러 양국의 협력은 만만치 않은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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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