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3곳 돌아 겨우 구했어요"…'귀하신 몸'된 은행 달력

남는 달력 처치 곤란…ESG경영 일환으로 발행량 축소
중고카페 유료 판매도…'이벤트'로 수요 겨낭해 배포

주부 A씨(66)는 동네 은행 3곳을 돌아다닌 끝에 2023년 새해 달력을 손에 쥐었다. 지난해만 해도 은행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달력을 받았지만 올해는 어렵다는 말에 직접 발품을 판 것이다. A씨는 "이미 달력이 다 나간 곳도 있고 어느 곳은 손님이 많은데도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한다더라"면서 "옛날엔 은행에서 깔아놓고 줬던 달력을 언제부터 이렇게 구하기 어렵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물운'의 상징이었던 은행 달력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종이 달력이 모바일로 대체되는 데다 은행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실천을 위해 발행량 자체를 줄이고 있어서다. 하지만 무료 달력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고 여전히 은행달력 '마니아'들이 상당해 중고사이트에선 웃돈이 붙어 거래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6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달력을 예전만큼 구하기 어려워진 건 발행량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점점 종이달력을 쓰는 분들이 줄어드니 지점에서는 매년 남는 달력을 어떻게 처치하느냐가 큰 고민이었다"며 "올해는 지점마다 필요한 수량을 미리 조사해 배포했다"고 말했다.

최근 은행들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ESG경영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환경 보호를 위해 내부 서류들까지 모바일로 대체하면서 매년 상당량의 종이달력 여분을 낭비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점 은행원들의 가욋일 부담도 상당했다. 전북 전주의 한 지점에 근무하는 은행원은 "연말에는 안 그래도 업무량이 많고 고객들도 많이 찾는데 달력만 받으러 오시는 분들까지 상대하려다 보니 직원들의 애로가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은행달력을 찾는 수요는 여전히 상당하다. 집안에 은행달력을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풍문에다 최근에는 종이달력을 무료 배포하는 곳도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유명 화백의 그림을 배경으로 한 이른바 '고퀄'(고퀄리티) 달력은 맘카페 등에서 회자될 정도다.

중고나라나 당근마켓에는 은행 달력을 적게는 3000원, 많게는 2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한다는 글이 넘쳐난다. 하루 전에 올라온 글이 이미 '판매 완료'될 정도니, 무료 배포 달력을 돈을 주고라도 구하려는 수요가 상당한 셈이다.

이에 은행들은 수요를 만족시키면서 환경보호까지 실천하는 방법으로 달력 배포 방식을 바꾸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이달 11일까지 KB스타뱅킹앱에서 2023 탁상용 달력 증정 이벤트를 진행한다. 신청자 중 1만명을 추첨으로 뽑아 2부씩 자택주소로 달력을 보내준다. 하나은행도 12월 한달간 하나원큐앱에서 매일 선착순 3000명을 선정해 우편으로 달력을 배송해준다. 달력 1부당 100원의 기부금을 적립해 청소년 지원사업에 전달한다.

두 은행은 태블릿PC에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플래너'도 배포한다. 아이패드 메모장 기능을 이용해 일정관리를 하는 MZ세대를 겨냥한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이달 15일까지 KB스타뱅킹 및 리브 Next 이벤트 페이지에서 2023년 갓생(God-生·부지런한 삶을 뜻하는 신조어) 목표를 입력한 전원에게 디지털 플래너를 무료 배포한다. 하나은행의 '하나원큐'앱에서도 내년 1월부터 디지털 플래너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내년 종이달력의 테마를 '친환경 ESG'로 정했다. 국제산림관리협의회에서 인증받은 친환경 종이를 사용했고, 쉬운 재활용을 위해 탁상형 달력 지지대의 코팅을 없애고 종이 포장지를 활용했다. 벽걸이 달력 상단의 플라스틱 홀더도 종이로 바꾸고, 자연의 소중함을 담은 그림들을 배경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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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