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자운대 비롯해 창원·평택·춘천·진해·장성 등 군시설 있는 6곳 영업
주류·장류·유제품·과자·음료·냉동식품 등 시중가 30~90% 선
상인 "매출 뚝..국방부, 민원 귀닫아", 지자체 "국방부 훈령 근거해 손 못대"
국방부에 묻자 "답변에 3∼7일 걸린다"
지난 10일 오전에 찾은 자운대 쇼핑타운 매장은 장을 보러 온 군인 가족과 인근 지역 주민들로 붐볐다. 자운대는 대전 유성구에 자리잡은 국군 군사교육·훈련시설이다. 계산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40대 여성은 “싸다는 소문 듣고 지난달부터 매주 온다. 모든 물건들이 시중의 반값이다. 카트가 없어 장을 못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자운대 쇼핑타운은 국방부 국군복지단이 운영한다. 군인복지기본법과 국군복지단설치법에 따라 군인과 그 가족 등의 복지증진을 위해 설치한 ‘군 마트’다. 국방부는 지난 1월부터 4월 사이 경남 창원·진해, 경기 평택, 강원 춘천, 전남 장성 등 대규모 군 시설이 위치한 6곳의 군 마트를 소재지 주민에게 개방했다. 대전시민들이 자운대 쇼핑타운을 맘껏 이용하게 된 배경이다. 충남 계룡에 있는 3군 통합기지 계룡대의 군 마트도 조만간 이용 대상을 지역 주민들로 확대한다.
자운대 쇼핑타운에선 주류·장류·유제품·건강식품·농수산물·과자·음료·냉동식품 같은 모든 소비재 품목을 판매한다. 일반 슈퍼마켓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은 판매가격이 일반 슈퍼마켓의 30~90% 수준으로 저렴하다는 점. 일반 마트에서 병당 2750원인 소주 한병이 1470원, 1만50원인 6개 묶음 캔맥주가 420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한 판매원은 “홍삼류 등 위탁판매 제품은 피엑스(PX·군인 매점) 가격에 팔고 있다”고 말했다. 군 마트 취급 물품이 일반 매장보다 저렴한 건 제조업체와 직접 물품 공급 계약을 체결해 중간 유통마진을 없애고 가격 할인율 입찰제를 시행해 납품 단가를 큰 폭으로 낮췄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문제는 군 마트가 싸다는 게 알려져 인근 주민들이 몰려들면서 지역 슈퍼마켓은 매출이 급감했다는 사실이다. 자운대 쇼핑타운에서 직선거리로 4㎞ 남짓 떨어진 유성구 신성동의 ㄹ슈퍼마켓 주인은 “자운대 쇼핑타운이 민간에 개방된 지난 4월부터 하루 매출이 평균 250만~300만원에서 120만~13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며 “가격 경쟁을 할 수 없어 시청과 구청, 국방부에 민원을 냈지만 감감무소식”이라고 말했다. 직선거리로 약 7㎞ 밖에 있는 유성구 온천동의 한 슈퍼마켓은 아예 주류를 판매하지 않고 있었다. 주인 김아무개(64)씨는 “어지간한 주류 도매점보다 자운대 술값이 싸다. 그렇다 보니 노래방이나 식당 업주들이 자운대에서 술을 사서 영업하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했다. 서구 도마동 ㄱ슈퍼마켓 신아무개 대표는 “우리 마트와 자운대는 승용차로 30여분 거리인데도 매출에 영향이 있다. 주말에 차 몰고 자운대로 가면 반값에 장을 보는데 누가 여기서 사겠느냐”고 되물었다.
지역 소매상들의 반발이 커지자 대전 유성구청은 국방부 국군복지단에 민원을 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지난 1월 국방부가 국군복지단에 보낸 ‘쇼핑타운 이용대상 확대 추진계획 검토결과 하달’이란 공문 한장이었다. 신하철 유성구 일자리정책실장은 “국방부는 훈령 등을 근거로 군 마트를 일반인에게 개방했다고 하는데, 군 마트는 행정기관의 권한이 미치는 범위 밖이어서 우리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국방부가 군 마트 이용 대상을 확대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4월 경기·강원지역 소상공인들이 낸 ‘군 영외마트의 부당운영에 대한 이의’ 민원에 대해 “군 마트의 운용목적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군 마트의 이용을 제한하는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결한 바 있다. 당시 지역 상인들은 “영외마트는 군인복지기본법에 근거해 군인 및 군인가족 등의 복지증진을 위해 시중보다 싼 군납 계약에 따라 상품을 판매하는데, 일반인이 이용하도록 함으로써 인근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국방부 복지단에서 근무한 예비역 영관장교는 “(권익위 의결 뒤인) 2014년 국방부 복지심의위원회가 국군복지단설치법을 개정하면서 ‘군 마트를 민간에 개방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는데, 이는 슈퍼나 편의점이 없는 전방부대 주변 민간인을 위한 편의 제공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권익위의 권고를 이행하기보단 법적 구멍을 막는 데 급급했다는 뜻이다. 이광진 대전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군 마트 개방으로 지역 소상공인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어 대전세종슈퍼마켓협동조합 등과 긴급하게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조만간 군 마트 이용 대상 확대 조처 취소를 국방부에 요구할 계획이다.
〈한겨레〉는 군 마트 민간 개방과 관련해 국방부 국군복지단 쇼핑몰관리과, 복지정책과 등에 지난 10일부터 13일 오전까지 여러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13일 통화한 국방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답변하는 데 3~7일 정도 기간이 걸린다”고 전해왔다.
<저작권자 ⓒ 매일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