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위안 vs 달러… 아시아 3국 환율 리스크] 1994년 악몽의 귀환? 달러 독주 지속에 신흥국 위기감 ↑
달러가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유로와 엔은 물론이고, 달러 대비 비교적 강세를 보이더 위안화마저 최근 약세로 돌아섰다. 달러화 '홀로 상승'이 장기화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불안도 커지고 있다. 특히 신흥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 시점이 더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향후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한 번에 금리를 50bp(0.5%포인트) 이상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강달러의 파장이 더욱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요통화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25일(이하 현지시간) 0.8% 상승한 101.86을 기록하며 2020년 3월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26일 아시아시장에서도 달러 강세는 이어졌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산하 외환교역(거래)센터는 위안화의 달러 대비 기준 환율을 전 거래일보다 0.0681위안 올린 6.5590위안으로 고시했다. 위안화의 달러 대비 가치가 1.04% 떨어지면서, 2015년 8월 13일 이래 7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은 127엔으로 다소 하락했지만, 연초에 비해 엔저가 지속되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의 가치도 내렸다. 26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9원 오른 1250.8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1250원을 넘은 것은 2년 1개월만에 처음이다.
이처럼 달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충격 완화를 위해 각국이 움직이고 있다. 중국 금융당국은 위안화 약세 통제에 나섰고, 일본 엔화 추락을 막기 위한 방안들도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들이 달러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기는 쉽지 않다. 강달러 때문에 세계 경기 불안이 커졌지만 결국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 안전자산인 달러로 돈아 모이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달러의 굴레는 신흥국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피델리티는 "역사적으로 미국 달러의 방향은 신흥시장 자산의 성과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면서 "장기간 미국 달러의 강세가 이어지면 신흥국 시장의 주식은 보통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고 보고서를 통해 지적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신흥시장 경제는 일반적으로 통화 방어를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주식 등 자산 시장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18년에도 미국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은 많은 신흥국시장 통화에 압박을 가했으며, 일부는 기록적인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달러가 오르면 신흥국들의 부채 부담이 늘어난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저금리 시대를 이용해 신흥국 정부와 기업은 부채를 늘렸다. 달러가 약세일 때 이 같은 전략은 더 많은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미국 채권 수익률과 달러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신흥국들의 성장과 전반적 부채 지속 가능성을 압박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25일 지적했다.
실제 미국 국채의 실질 수익률이 높아지면서 신흥국에서는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10년물 국채의 실질 수익률은 지난 6주 동안 약 -1.10%에서 0으로 뛰어올랐다. 텔리머의 수석 경제학자 패트릭 커런은 시장이 여전히 얼마나 향후 (미국 실질 수익률의) 상승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미국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최고 수준인 것은 물론 10년 이후 인플레이션 기대치 역시 25년 만에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최근 연준의 금리 인상 움직임은 12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300bp올리면서 여러 번 50bp, 75bp씩 금리 인상을 단행했던 1994~1995년 당시와 비슷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연준의 신속한 긴축은 미국 경제가 불황을 피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잠재우는 연착륙에 성공하게 했다. 그러나 당시 달러화 강세와 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은 멕시코 '데킬라 위기' 등 신흥국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남미를 휘청이게 했던 데킬라 위기는 1997년 아시아 위기로 번져 1998년 러시아와 1999년 브라질 위기까지 일으켰다. 물론 당시에 비해 신흥국 시장은 달러 부채 비중이나 외환보유액 규모 등이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달러 강세의 지속으로 향후 수년간 신흥국들은 코로나19 이전 성장 경로를 회복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IMF 역시 신흥시장이 세계 금융 상황의 긴축에 여전히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IMF에 따르면 신흥국 공공부채는 GDP 대비 약 66%로 2008년 이후 사실상 두 배로 늘었다. 그 부채 폭발은 2008년 위기 이후 세계 금리가 사실상 제로(0)로 붕괴되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장이 둔화하면서 IMF는 신흥국들의 GDP 대비 부채가 2027년까지 75%를 향해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았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금융연구소 분석가들은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모든 부문의 신흥국 채권과 대출금이 총 9조 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그 중 약 85%가 현지 통화 부채지만 1조 달러 이상이 미국 금리 상승에 노출되어 있다. 국제통화기금(IIF)의 지속가능성연구 책임자인 엠레 티프틱은 외화 차입에 더 많이 의존하는 국가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층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어 "많은 신흥국 국가들이 단기 국채로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으며, 이들 부채는 금리가 상승하는 환경 속에서 상환돼야 하기 때문에 재정수지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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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