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잠 못 이루는' 한국의 밤 집중 조명

수면제 중독 약 10만명..수면산업 규모 3조원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사회 변화 필요"

▲ 한국인의 수면장애를 집중 조명한 영국 BBC 방송 뉴스. 트위터 캡처
‘한국은 왜 그렇게 잠 못 자는 사람이 많을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이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영국 BBC 방송이 이런 제목의 기사에서 ‘잠 못 드는 한국 사회’를 집중 조명해 눈길을 끈다. BBC는 한국이 경험한 고도의 압축적 경제성장을 근본 원인으로 제시하며 “그 결과 한국인들은 과로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잠이 부족해졌다”고 진단한다.

BBC는 먼저 서울 강남의 한 수면 클릭닉에서 일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A씨와 인터뷰했다. 그는 BBC에 “하룻밤에 수면제를 20알까지 복용하는 고객도 종종 본다”며 “보통 잠이 드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한국인들은 정말 빨리 자고 싶어하기 때문에 약을 먹는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이가 잠결에 걷는다”며 “서울 도심에서 몽유병 환자가 일으킨 교통사고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일반인 가운데 BBC가 만난 29세 여성 B씨는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소연했다. 홍보 업무 담당자인 그는 “평균적으로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어떤 날은 새벽 3시까지 퇴근하지 못한 적도 있다”며 “직장 상사가 가끔 한밤중에도 전화를 걸어 ‘즉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하는 통에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B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요즘은 프리랜서로 재택근무를 한다고 한다.

또 다른 여성 C씨 역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장애를 앓게 된 경우다. 마음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 그는 고민 끝에 서울 근교의 한 불교 사찰을 찾아갔다. 이곳은 템플스테이 수련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명상을 하면 잠이 잘 온다”는 얘기를 듣고 몰려든 직장인들로 붐빈다. C씨는 “명상을 통해 ‘모든 문제는 나에게서 시작된다’는 점을 배웠다”며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BBC는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약 10만명의 한국인이 수면제에 중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침대 시트, 베개, 한방 보약 등 이른바 ‘수면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해 2019년 기준으로 그 시장 규모가 무려 25억달러(약 3조400억원)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도대체 한국인은 왜 그토록 잠을 못 이루는 걸까. BBC는 한국의 역사에서 답을 찾았다. 보도는 “불과 몇십 년 만에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발전한 국가들 중 하나로 성장했다”며 “어떻게든 잘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에 한국인은 과로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잠이 부족해졌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수면장애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의 구조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인 만큼 사회와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특히 비판적인 평론가들의 견해를 인용해 “과다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수면 부족의 해결책을 개인더러 찾으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명상이나 짧은 휴식 같은 것은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고,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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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