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현지에 진출, 법인 및 지사를 운영 중인 곳은 10여 곳에 이른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LG전자, 현대코퍼레이션(옛 현대종합상사), 포스코인터내셔널, 한국타이어 등이다. 이들 기업은 발 빠르게 현지 파견 주재원들을 전원 철수시킨 상태다. 다만 남겨진 설비와 영업망 관리 차원에서 산업통상자원부를 포함한 정부기관, 코트라 등과 소통하며 24시간 비상대응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산업계의 가장 큰 걱정은 공급망 차질이다. 특히 반도체 업계는 생산에 필수적인 네온과 아르곤, 제논 등 특수가스 수급 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해당 특수가스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수입 의존도는 약 50%에 달한다. 일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특수가스를 여유 있게 확보해뒀지만, 사태 장기화에 따른 대책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석유다. 미국·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3대 산유국인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가 본격화하면 우리도 에너지 수급을 안심할 수 없다. 다만 지난해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5.6%에 불과해 중동·북미·호주 등 다른 공급망을 택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대한 국제 수요가 몰릴 경우, 국제유가 폭등에 따른 타격을 피하기 힘들다. 이에 산업부는 23일 ‘제20차 산업자원안보TF’를 열고 다른 국가로부터 대체 물량을 확보하고 비축유까지 방출키로 했다.
유통 기업들도 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현재로선 관망세지만, 사태가 심화할 경우 곡물 수급에 차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소맥·옥수수 등 세계 곡물시장의 비중이 상당해 국제 곡물가격 인상도 불가피하다. 이는 곧 우리 식음료 제품 값 인상에 압박이 될 수 있다.
오리온, 롯데제과, KT&G 등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 오리온과 롯데제과의 지난해 러시아법인 매출액은 각각 1000억원, 500억원 수준이다. 이들은 추가 투자도 계획 중인 상태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오리온은 올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러시아 트베리주 크립초바에 세 번째 신공장을 건설 중이다. 롯데제과도 지난달 러시아 현지법인에 약 340억원을 투자해 초코파이 생산라인과 창고건물을 증축했다.
금융권도 당장 큰 우려는 하지 않지만, 전쟁이 발발하면 국제금융 시장이 요동칠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현재 국내 주요 은행의 현지 사무소나 법인은 동유럽이 아닌 영국 런던 등 서유럽에 몰려 있다. 실제 동유럽에 진출한 시중은행은 우리은행(폴란드, 헝가리), 신한은행(폴란드, 헝가리, 카자흐스탄) 등으로, 우크라이나 현지에 진출한 곳은 전무하다.
다만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러시아에 법인을 두고 있다. 국책은행인 KDB산업·IBK기업은행도 사무소를 두고 있다. 이들 은행은 러시아 본토 내 군사적 충돌은 우려하지 않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국외영업점 지원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계획)'을 수립, 현지 대사관 및 타 금융기관과의 정보공유에 나서고 있다. 여타 은행들도 장기적인 리스크 모니터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파병·군사지원은 하지 않되, "미국과 주요 서방국들의 대러 제재 협의에 가능성을 열고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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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영 기자 다른기사보기